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환율 800원 시대 오나] <하> 속도와의 싸움

하반기 800원대 진입 가능성…美·中환율조율이 최대변수<br>딜러들 조차 "800원대 검토할때 됐다"


지난 4월 한달 동안 외환 당국은 무려 7회 이상 시장에 대규모 실탄(달러 매수 자금)을 쏟아부었다. 지난달 25일에는 ‘고강도 전격전’이란 이름 아래 한꺼번에 10억달러 가까이 소나기성 개입을 단행했고 원ㆍ달러 환율은 10원 이상 수직 상승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인위적인 개입의 약발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글로벌 달러의 약세 흐름 속에서 우리 외환당국은 무기력하게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한 외환 당국자는 “지금 들어가봐야 실탄만 날릴 수 있다”며 자조 섞인 발언을 꺼내기도 했다. 전날의 속절 없는 추락을 이겨내고 9일 다시 930원대로 복귀하는 데 성공했지만 당국의 개입은 약발의 강도를 점점 잃어가는 느낌이다. 외환 보유고를 한달 만에 55억5,000만달러나 늘린 채. ‘달러당 800원대의 시대.’ 지난해 말 한 외환딜러는 이를 ‘허공의 환율’로 치부했다. 달러화가 아무리 기를 펴지 못한다고 해도 원ㆍ달러가 800원대까지 미끄러지는 것은 상정도 하지 말라는 투였다. 하지만 920~930원까지 추락한 지금, 상황은 너무도 달라졌다. 사석에서 만난 정부 고위인사조차도 “시장 참여자들도 이제 900원 정도까지 떨어지는 것은 예상하고 있지 않느냐”며 “언제까지 정부만 바라보고 있을 거냐”고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졌다. 물론 현재의 분석만으로 환율 800원 시대를 관측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 이날 환율이 강하게 반등하자 달러당 900원은 ‘무너질 수 없는 벽’이라는 낙관론이 비등하는 실정이다. 단기적으로 돌아가는 상황만 보더라도 900원 붕괴가 1~2개월 안에 손쉽게 이뤄질 것 같지는 않다. 미국의 금리인상 종결이라는 테마가 이미 시장에 녹아든데다 미국이 10일 발표하는 환율 보고서에서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즉각 지정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우리의 경상수지 적자가 이어지고 있고 ‘원화의 국제화’를 테마로 한 추가적인 외환규제 완화 정책이 기다리고 있는 점도 900원 사수(死守)론자들의 논리다. 그러나 이 같은 분석이 유효한 시기는 상반기, 길어야 하반기 중반 정도에 불과할 것이라고 보는 편이 나을 듯하다. 미국의 거대한 쌍둥이 적자 등을 감안할 때 현재의 달러 약세 기조 자체를 역류하기는 힘들 것이란 판단 때문이다. ‘신플라자 합의설’이 제기되는 것도 이런 줄기로부터 이어진다. 미국과 중국이 환율조작국 지정이라는 치명적인 갈등은 피하되 쌍둥이 적자 해소를 위해 다자간 금리ㆍ환율 정책 합의를 이뤄낼 것이란 설명이다. 정해근 대우증권 상무는 “플라자합의와 같은 거창한 용어를 쓰지는 못하겠지만 중국과 미국의 암묵적 합의만으로도 상당한 위력이 있을 것”이라며 “중국이 위안화를 야금야금 절상시킬 수 있는 만큼 원ㆍ달러도 외환위기 이전 수준인 800원대로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황동원 현대경제연구원 선임 연구원도 “심각하게 본다면 800원도 검토할 때가 됐으며 딜러들조차 이런 우려를 제기한다”고 말했다. 노상칠 국민은행 외화자금팀 과장은 환율의 이런 모든 움직임을 ‘속도와의 싸움’으로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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