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김우중 누구인가

김우중 누구인가샐러리맨의 우상으로 「대우신화」를 창조했던 김우중(金宇中) 전 대우 회장은 우리 경제성장사에 남긴 족적이 매우 교훈적이어서 그에 대한 평가가 아직도 엇갈리고 있다. 교육자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어린시절 집안과 동생들을 보살피기 위해 신문배달과 열무, 냉차 장사를 했고 학생시절에는 차비를 아낀 돈으로 책을 사 공부를 했던 일화는 어김 없이 「김우중 성공신화」의 첫 페이지를 장식한다. 지난 67년 자본금 500만원, 직원 5명으로 창업한 대우실업은 대우그룹의 모태가 됐다. 당시부터 90년대 재계서열 2위까지 올라선 대우의 성장사는 한마디로 우리 경제사의 축소판이다. 트리코트 원단 수출의 귀재로 불린 31세의 청년 金전회장은 서울 충무로의 열평 남짓한 사무실에 대우실업을 만들었고 정부의 수출드라이브 정책에 힘입어 셔츠와 내의류 원단을 동남아에 수출, 설립 1년 만인 68년 대통령 표창을 받을 정도로 급성장했다. 70년대 들어 대우는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에 발빠르게 편승하면서 무역에서 중공업분야로 급속히 사세를 넓혀나갔고 76년에는 대우중공업의 전신인 한국기계를,78년에는 대우조선의 전신인 옥포조선, 대우자동차의 전신인 새한자동차를 각각 넘겨받았다. 80년대 들어 대우실업이 ㈜대우로 바뀌면서 그룹회장제가 도입됐고 그룹 외형이 갖춰졌다. 90년대 들어 대우는 내수보다 해외시장에 역량을 집중했다. 「세상은 넓고 할일은 많다」는 베스트셀러를 펴낸 金전회장은 93년 세계경영의 경영이념을 선포하고 해외로 뛰쳐나가면서 세계기업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러나 金전회장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의 높은 파고를 결국 넘지 못했다. 93년 먼저 세계경영을 선언, 루마니아·폴란드·우즈베키스탄 등 동구권과 구소련 지역에 진출하는 한편 지난해 쌍용자동차를 인수하는 등 확대경영 전략을 폈으나 결국 몰락을 자초하고 말았다. IMF 체제 이후 모든 기업들이 감량경영에 몰두하던 상황에서 金전회장의 선택은 대세에 역류하는 팽창경영이었기 때문이다. 金전회장은 결국 99년 6월 말 대우 사장단 전원이 사표를 제출한 데 이어 7월19일 유동성위기 극복방안으로 金전회장의 10조1,000억원 상당의 전재산 담보제공이라는 처방이 제시됐고 결국 퇴진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金전회장은 99년 10월18일 중국 산둥성의 옌타이 자동차부품공장준공식에 참석하고 종적을 감춘 뒤 해외에서 잠행을 계속해왔다. 金전회장은 베트남·미국·독일 등지로 옮겨다니다가 99년 말께 미국 동부지역으로 떠나 두달간 머물며 심장질환 치료를 받았고 올해 초 독일로 거처를 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성주기자SJYON@SED.CO.KR 입력시간 2000/09/15 18:42 ◀ 이전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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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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