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소비자 우롱하는 유명무실 '품질등급제'

2003년 도입된 계란 품질등급제가 제 역할을 못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축산유통종합정보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생산된 계란 141억개 가운데 등급판정을 받은 것은 전체의 6%에 불과한 8억5,800만개였다. 하지만 이 가운데 무려 99.9%가 1등급을 받아 사실상 등급제가 있으나 마나 한 실정이다. 등급판정을 원하는 농가의 계란에 한해 심사하다 보니 비싼 세척기가 없는 영세농가들은 아예 신청조차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 등급란 제도에서는 등급판정을 신청하려면 계란을 세척해야 한다. 그런데 세척기 가격이 최대 10억원을 호가해 일반농가에는 언감생심이다. 대부분의 1등급 계란은 대규모 농가나 기업농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관련기사



전기를 적게 쓰는 가전제품에 부여되는 에너지효율등급제도 또한 사정은 다르지 않다. 변별력이 떨어지는 기준을 적용하다 보니 올 들어 등급을 받은 제습기 372종 가운데 무려 92%인 343종이 1등급이었다. 쌀의 품질에 따라 특·상·보통 등 세 가지 중 하나로 표기하도록 한 쌀 품질등급제도 유명무실한 상태다. 소비자원 조사 결과 시판 중인 포장 쌀 10개 가운데 7개 이상이 등급표기 없이 팔리고 있다. 양곡관리법에 따른 등급검사를 하지 않아도 '미검사' 표시만 하면 판매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품질등급제를 운영하는 것은 제품의 품질을 높이고 소비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다. 소비자들은 1등급 인증 마크가 찍힌 상품은 품질이 좋을 걸로 믿고 2~3배 비싼 값을 주고서라도 산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품질등급제는 등급을 받지 않은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오인을 조장하면서 가격왜곡 현상만 부추길 뿐이다. 등급판정 신청기준을 현실화하고 심사의 변별력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찾는 등 품질등급제 재정비가 시급하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