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브라질 등 해외진출 잇따라
지구 생각하는 마음에 회사 세워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벨' 처럼
황폐해진 땅에 힘 불어넣을 것
경기도 화성 시가지를 벗어나 나무가 빼곡하게 둘러싼 구불구불한 도로를 한동안 달리자 저 멀리 뜬금없이 나무 위로 비죽 솟아오른 철제 '지구 모형'이 보였다.
3층 높이의 건물 꼭대기에 지름 6m의 거대한 지구 모형을 얹어놓은 곳은 폐기물 재활용 전문기업인 포스벨이다.
나경덕(59ㆍ사진) 포스벨 회장은 지구를 너무 좋아해 사옥을 지으면 지구 모형을 꼭 올려놓겠다는 생각을 품어오다 결국 꿈을 이뤘다. "용접기술자 한 명과 3톤짜리 지구 모형을 제작해 건물 위에 올렸지요. 사옥과 마주보고 있는 플랜트 생산공장에도 '지구 환경을 생각하는 기업 포스벨'이라는 문구를 대문짝만 하게 붙였습니다."
설립 13년째를 맞은 포스벨이 하는 일은 기업 이름에 그대로 나타나 있다. 포스벨의 '벨'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땅의 신을 뜻한다. 불법 쓰레기가 묻혀 있는 땅에서 쓰레기를 파내 분리수거를 하고 에너지화하거나 재해로 쑥대밭이 된 지역에서 쓰레기를 치워 땅에 힘을 불어넣어주는 것이 바로 포스벨의 일이다. 지난해 매출액은 200억원을 넘었고 해마다 성장률이 30%를 웃돈다.
나 회장은 쓰레기는 으레 땅에 '묻는 것'이라고 여겼던 20년 전부터 쓰레기를 분류해 재활용하고 에너지화하는 환경플랜트를 제작해온 이 분야의 개척자다.
그러나 나 회장도 원래부터 환경 분야에 뜻을 둔 것은 아니었다. 건설회사의 터파기 공사를 맡아 하던 사업 초기 당시는 건설사들은 밤이면 하남이나 남양주 등에 쓰레기를 몰래 퍼다 놓고 공터 주인에게 헐값을 주고 쓰레기를 처리했다. 그러다가 걸려도 담당 공무원에게 돈 몇 푼 쥐어주면 무마되던 시대였다.
터파기 공사를 하다 보면 하염없이 나오는 매립 쓰레기 문제를 결코 피할 수 없었다. 1993년 서울시 광진구 구의동 현대프라임 아파트 공사 때도 땅속에 잔뜩 묻혀 있던 쓰레기 때문에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쓰레기가 묻혀 있으면 나중에 가스가 빠지면서 냄새가 고약한 것은 물론 지반이 가라앉으면서 아파트가 붕괴할 위험이 있다. 그렇다고 파낸 흙과 쓰레기를 모두 매립지로 보내자니 비용이 많이 들었다.
흙이나 자잘한 자갈이 빠질 수 있도록 구멍이 송송 뚫린 원통에 흙과 쓰레기를 넣고 돌려 흙을 떨어뜨리는 포스벨의 매립폐기물 고효율 선별시스템(수펙스 시스템)의 기본구상이 이 때 나왔다.
그는 "그 쓰레기들을 파내 흙과 분리하면서 우리나라 곳곳에 이렇게 쓰레기가 묻혀 있을 텐데 이건 언젠가는 누군가 해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래서 이 분야로 밀고 나가기로 결심을 한 것"이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의지만 가지고 변변한 기술도 없이 시작한 사업은 어려움투성이였다. 원통에 매립폐기물을 넣어 흙부스러기들을 털어내는 1차 선별이 끝나고 남은 쓰레기가 컨베이어 벨트로 떨어지면 바람을 불어 가벼운 비닐이나 종이류를 날려보내는 것이 2차 선별. 원통의 구멍이 진흙에 하도 자주 막혀 궁여지책으로 석유 버너로 원통을 계속 그을리느라 연기가 매캐했고 바람에 쓰레기조각들은 펄펄 날렸다.
"1998년 김포 하수종말처리장에서 이런 방식으로 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어떤 신문사에서 독일 환경업체 관계자들이 환경업체를 견학하고 싶다고 하니 보여줄 수 있느냐고 의뢰가 왔어요. 보여줄 것도 없다고 했는데 하도 보여달라고 하니까 오라고 했지요. 그런데 한참 구경을 한 독일 사람들이 황당한 표정을 짓는 거예요.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매립지에서 유해가스가 나오고 먼지도 흩날릴 텐데 이런 원시적인 방법으로 처리를 하면 되레 2차 오염이 되지 않겠느냐는 거였어요."
그날부터 새로운 쓰레기 분리기법을 만들기 위한 나 회장의 연구가 시작됐다. 쓰레기를 바람으로 날려보내는 방식이 가장 먼저 개선돼야 할 점이었다. 그는 인부들이 컨베이어 벨트 곁에서 막대기 같은 것으로 큰 쓰레기를 끌어내는 데서 착안해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일종의 갈퀴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큰 쓰레기를 떨어뜨리는 방식을 고안해냈다.
다음으로 원통을 불로 그을리는 방법 대신 원통 안에 칼날이 달린 원통이 돌도록 만들어 구멍이 막히면 뚫을 수 있게 했다. 나 회장은 "간단하지만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앞선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연구개발이 끝나고 1년 만인 2006년 일본 아오모리현에서 연락이 왔다. 아오모리에 있는 산에 묻힌 불법 쓰레기 때문에 주변 강에서 오염물질이 검출됐으니 가로 50m, 세로 100m가량의 불법 매립 지역을 시범적으로 정비해달라는 것이었다.
일주일 동안 기계를 설치하고 시의원이며 공무원, 기업 임원들이 참관하는 시범가동을 하기 하루 전, 하늘에서는 무심하게도 굵은 소나기가 내렸다. "쓰레기가 곤죽이 돼 손으로 짜면 물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수분이 많은 쓰레기는 처리해본 적은 없지만 시험가동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가슴을 졸이며 10분 정도 기계가 돌았을까, 건설업체 사장이 저한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습니다. 성공이었습니다."
아오모리현에서의 인연을 시작으로 지난해에는 미야기현의 4개 지점에서 쓰나미 폐기물을 처리했다. "방송에서 본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처참했지요. 몇 만톤짜리 배가 산 위에 올라가 있고 부서진 집 잔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한 지역당 한 대씩 총 4개의 플랜트를 공급했고 하루 12시간, 800톤씩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손이 거의 필요 없는 뛰어난 기술력 덕에 포스벨은 방사능 오염 지역에서도 추가로 폐기물 분류처리를 할 계획이다.
포스벨은 일본뿐만 아니라 중국과 베트남ㆍ카타르와 브라질까지 해외사업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쓰레기 매립지 부족 문제로 홍역을 앓고 있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카슨시에서 기술설명회를 하고 6월과 5월 각 시의 시장에게 명예시민권도 받았다.
빵 문화가 발달한 유럽과 달리 국물 문화가 발달하고 상대적으로 분리수거가 아직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아시아 쓰레기는 습기가 많고 분류가 어려워 환경산업이 발달한 유럽의 기술도 아시아 쓰레기는 분류가 어렵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나 회장은 "최악의 상태의 폐기물을 선별할 수 있는 기술이 있기 때문에 동남아 등의 국가에서 경쟁력이 있다"며 "브라질에서도 오는 2014년부터 분류와 재활용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매립이 안 되기 때문에 계약이 빠르게 진행 중이고 중국은 올해 안에 계약이 성사될 것 같다"고 전했다.
해외 곳곳을 누비며 플랜트의 현지화에 고심하는 나 회장이지만 단 한 가지 타협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입맛이라고 한다. 나 회장은 출국할 때면 라면과 즉석밥ㆍ김치는 물론 젓갈까지 바리바리 싼 커다란 보따리를 꾸려간다. 가져간 음식이 떨어지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호텔 레스토랑 샐러드바에서 양파와 마늘ㆍ고추 같은 친숙한 재료를 모아 간장을 뿌려 먹는다고 한다.
"요즘 사람들은 피자나 햄버거ㆍ빵 같은 것을 많이 먹지만 저는 여전히 한식이 좋습니다. 남들은 좋은 것 좀 먹으라고 하는데 저는 김치찌개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걸 어떡합니까. 다행히 이제는 다른 나라에도 한국 음식점이 많이 생겨 옛날만큼 출장이 힘들지는 않습니다. 어느 나라를 가도 한 끼 정도는 제대로 된 한식을 먹을 수 있게 됐습니다."
● 나경덕 회장은 |
기술 개발해도 실증화 어려워… 공공기관부터 제품 써줘야 박윤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