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만델라가 남긴 것


넬슨 만델라가 5개월간 투병 끝에 임종하자 남아프리카공화국 사람들은 물론 전 세계인이 안타까워하며 애도하고 있다. 그만큼 만델라가 세상 사람들의 존경과 관심을 받은 것은 그가 남보다 뛰어난 천재이거나 유명한 배우여서가 아니다. 만델라는 1918년 남아공 트란스케이주(州)의 음베조라는 작은 마을에서 템부족 추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대추장의 양자로 입양돼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만델라는 '검은 영국인'으로서 꿈을 키우고 자신의 꿈인 변호사가 되기 위해 법률 공부에만 매진했다.

이처럼 만델라는 대학 밖에서 일어나고 있는 아파르트헤이트에 그리 민감하지 않았다.


화합 이끄는 리더십 역할에 충실

당시 아프리카 사람 나이로는 늦은 감이 있던 26세에 만델라는 아프리카민족회의(ANC)에 가입했다. 이 검은 영국인은 '감옥에 가는 것이 명예의 상징'이라고 여길 만큼 '민족의 창'을 비롯한 여러 단체에 참여해 반인륜적인 남아공의 백인 통치에 저항했다. 만델라는 '생각만 하는' 지식인이 아니라 '행동하는' 지식인이 어떤 것인지 여실히 보여줬다. 하지만 만델라의 투쟁은 그가 46세이던 1964년 국가 전복 혐의로 종신형을 받고 악명 높은 로벤섬에 수감되면서 마감됐다.

하지만 만델라는 로벤섬에서도 또 다른 방식으로 반(反)아파르트헤이트 운동을 전개했다. 이러한 운동의 일환으로 그는 백인 간수들이 흑인에게 저지르는 부당한 행위와 학대에 항거함으로써 교도소 환경을 개선했다.


뿐만 아니라 만델라는 여러 투쟁 단체에서 활동하다 수감된 혼혈인, 과격 흑인 운동가, 공산주의자 등 다양한 부류를 접할 수 있었다. 그는 이들과 끊임없는 토론을 통해 상대방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자신에 대한 긍정적 사고를 키웠으며 희망을 이어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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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만델라야말로 진정한 민주주의가 어떤 것인지 일깨워준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에 의해서 통치된다. 하지만 이러한 다수결에 의해 소수로 전락한 많은 사람들이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소외되거나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다수의 의지에 휩쓸리는 민주주의의 횡포는 남과의 차이를 인정해주는 톨레랑스(관용)의 정신마저도 배척하지 않는가.

나와 다름 인정하는 관용 정신 일깨워

만델라는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과 지지 세력을 이용해 사람들을 지배하려는 유혹에 쉽게 빠지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만델라는 흑인·백인 모두에게 존경받고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카리스마를 가진 진정성 있는 리더가 됐다. 또한 그는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를 조정해 타협점을 만들어가는 조정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다. 진정한 '화합과 관용'은 남과의 다름을 인정해주는 관행이 실천될 때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그의 말을 통해 그가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으려는 리더십의 참모습을 발견할 수가 있다. "선거를 치른 다음날 벤츠를 몰고 다닌다거나 자신의 뒷마당 수영장에서 수영을 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지 마십시오. 나는 여러분의 자긍심을 높이고 여러분 나라의 시민이 되는 것 외에는 생활에 극적인 변화를 줄 수 없을 것입니다."

권력 의지를 스스로 꺾고 물러난 만델라와 그의 정신은 여전히 복종에만 의지하는 잘못된 리더십을 발휘하는 우리 사회에 성찰의 기회를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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