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월출산과 디카

2003/3/22(토) 뫼솔산악회 편승 서초구청 (7:05출발) &#8211; 실내체육관 (11:30 도착) &#8211; 산성대 &#8211; 천왕봉(13:50-14:20) &#8211; 미왕재 (16:40) &#8211;도갑사 &#8211; 주차장 (17:25) 서초구청 (22:45)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만행이 지구촌에 실시간 중계되고 있는데 남의 나라라는 이유로, 내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산행에 나섰습니다. 정말 그만이었습니다. 청명한 날씨에 이렇게 아름다운 산이 남도에 있을까 하며 6시간 내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다녔습니다. 사람들이 소금강이라 하니까 월출산이 비웃습니다. 나름의 특색이 있는데 왜 금강산하고 비교하냐구요. 6,000 만년전에 시작했다는 야외 조각 현장. 저마다 다른 모양으로 반짝 반짝 빛나는 쑥 바위보석들의 향연장이네요…. 우리 생활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은 다 있고 아직도 이 야외 조각장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금강산에서는 만물상이라고 했나요? 실내체육관에서 산성대 암릉을 탔지요. 능선을 따라 만들어 놓은 작품들 물개가 옆에서 나를 봐요. 한참 물속을 헤메다 숨을 고르려 바위에 올라 사방을 두리번거리다 굳어버린 모습 가다 보니 낯익은 녀석이 시선을 잽싸게 붙드네요. 거북이. 결승선에서 토끼가 안 보여 어디 있나 목을 길게 빼고 찾고 있어요. 아시다시피 토끼는 중도에서 깊은 잠에 들었잖아요. 조금 더 바위를 타다 보니 고인돌입니다. 우리 조상이 만든 어떤 고인돌보다 웅장하고 듬직하고 그 뒤에 보초까지 떡 버티고 있네요. 남근석은 좀 쑥스러운지 멀리서 다른 바위들을 들러리 세우고 서 있네요. 완성품이 아니라서 좀.... 왜 남자들이 그렇게 법석이냐고 한 아줌마가 핀잔을 주네요. 남근이 있으니 여근도 있겠지요. 조물주가 그렇게 무정하지 않지요. 표지판 설명에 의하면 구정봉 아래서 남근석을 향해 바라 보고 있다나요. 굴의 깊이가 10미터라는 데 보자마자 음기가 내 몸 속으로 불쑥 들어오는 것이 느껴지내요. 아낙네들이 전쟁을 피해 이 곳에서 베를 짰다고 해서 베틀굴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긴 하지만… 사람의 생명터를 못 본 전국의 늙은 총각들 다 오라네요. 한 몸에 다 받을 수 있다나요. 천황봉으로 통한다는 통천문은 천당이나 극락으로 들어가는 문인가? 아님 염라대왕한테 가는... 나 하나 겨우 빠져 나갈 수 있네요. 구름다리는 동북쪽 멀리 짙푸른 저수지를 배경으로 아스라이 걸렸네요. 월출산의 이 하이라이트는 다음 기회로 미룰 수 밖에.. 북쪽으로 보이는 영암 주위에 넓게 펼쳐진 신북평야도 한눈에 시원하게 들어 오네요. 하춘화의 ``영암 아리랑``의 월출산은 달이 안보이네요. 곳곳에 월남사, 월하리… 달 월자 항렬을 쓰고 있는데. 그걸 못 볼 테니 보라면서 아침 집을 나설 때 서쪽 아파트 사이로 해 나오는 줄도 모르고 희미하게 내밀더군요. 사진에서 본 총상의 이라크 아이처럼 한쪽이 망가진 얼굴을 하고… 달이 뜬다 달이 뜬다 둥근 둥근 달이 뜬다 월출산 천왕봉에 보름달이 뜬다 아리랑 동동 쓰리랑 동동 에헤야 데헤야 어사와 데야 달 보는 아리랑 임 보는 아리랑… 영암 아리랑 이 보름달 보러 언젠가 밤에 한번 천왕봉에 올라봐와야겠지요. 사방으로 쭉쭉 뻗은 능선에서 바위들이 눈이 나쁘냐고 힐난하네요. 이젠 눈이 마비되었어요. 말을 하면 할수록 월출산을 훼손시킬 뿐입니다. 그냥 누워서 몇 날 몇 일 임보듯 보고만 있고 싶네요. 미왕재 억새밭의 억새는 겨울이 지나 은백색을 다 떨구어서 보여줄게 없다네요. 봄인데 잘 못하면 마귀할멈의 모습이 된다나요. 제 분수를 아는 것 같았어요. 이 홍계골에는 동백나무를 빼면 뭔가 허전하다네요. 큰 키에 열 아홉 처녀의 살결처럼 보드라운 몸매에 푸른 잎을 하고 있네요. 아직 이르다는데 부지런떠는 몇몇 꽃송이가 불그스레 얼굴을 하고 있네요. 비슷한 활엽 상록수인 청지목이 들러리를 서 주고요. 골짜기에 유난히 많이 보이는 굴참나무, 거친 알통의 껍질이 정말 코르크네요. 사이사이 사촌인 신갈나무가 빠질리 없지요. 때이른 진달래가 몇 군데서 반기네요. 얼굴은 작지만 다 필 때는 돋아보이지 않아 먼저 피웠다나요. 영암 오는 길에 산수유와 개나리한테서 남도의 봄 이야기를 좀 들었지요. 도갑사의 발굴된 넓은 절터는 신라 말의 도선의 위력이 돋보이네요. 왕인 박사와 쌍벽을 이룬다는 영암이 낳은 두 인물중의 하나… 도갑사를 나와 서울을 향하는데 제법 세월을 흘러보낸 벚나무가 도로가에서 인사합니다. 만개했을때 다시 오라고.. 지 얼굴이 없는 월출산은 다 본게 아니랍니다 달은 못 봐도 제 얼굴을 봐야만이 바위와의 조화를 제대로 보는 거라고 말하는 듯 싶네요. * * * 이런 기쁨에 집에 도착하니 11시 넘어섰지요. 아침 6시 반에 집을 나섰으니 16시간 반 만에 베낭을 풀다보니 디카가 안보입니다. 가슴이 철렁. ``버스를 타고서 배낭속의 겉옷을 끄집어내다 흘린 것이 틀림없다.`` 아들의 인상이 구겨지며 기분나쁜 소리가 내 귀를 스칩니다. 12시 넘어 대장님의 휴대폰에 전화를 거니 잠들었답니다. 힘도 드셨겠지요. 잃어버렸음에 틀림없겠지요?! 아침에 일어나 출근전인 7시반에 전화했습니다 그때쯤은 서초구청을 떠나 일요산행을 시작한 30여분 후. 망원경 같은 게 있다는 대답입니다. ``디카로 잘못 알았겠지? 역시 선량한 사람들…`` 일요일 하루 맘 놓고 토요일 월출산 생각하며 회사에서 일하고 월요일 12시가 가까워 다시 확인 전화. 그녀는 카메라가 아니랍니다. 순간 아들과 마누라의 일그러진 얼굴이 내 마음을 짓누릅니다. 혹시나 해서 토요일 옆에 앉은 분 전화번호를 알려달라니 이렇게 저렇게 묘사하며 알려준 휴대 전화번호. 신호가 가니 기운차게 받습니다. ``토요일 옆에 앉았던 사람인데요 혹시 좌석아래 바닥에서 카메라 못봤습니까?`` 스스로가 한심스러웠다. 7두개 (77)맞은 사람 같으니.... 혹시 주워가지 않았느냐고 도둑 취급한다고 역성내면 어떻게 하나 조바심하면서… 실낱 같은 기대로… 거침없이 못 봤다며 안됐다는 목소립니다. 조금 있으니 다시 전화 벨이 울립니다. 박대장님의 전화. 운전기사가 니콘 카메라를 차 바닥에서 주워 선반에 놓아두었답니다. 디카인지 일반 카메라인지는 모르겠다며... 분명히 내 것인데 혹시나 해서 아들에게 전화해 물어 보니 니콘이 맞답니다. 이쯤이면 분명하겠지요? 다시 전화해 분명하다고 하니까 ``목요일 버스기사 만나면 (이 산악회는 목,토,일 산행) 찾아 후암동 집에 가져다 놓을께요” 역시 착한 사람이 많구나 . 월요일 넷이 가서 먹은 칼국수 점심이 그렇게 맛있더군요. 소주요 물론이지요. 술기운에 쓴 거랍니다. 용궁에 갔다 왔습니다. 하마터면 마음속의 월출산 조각 작품 산산조각날 뻔 했습니다. 4월에 두 번만 더 가서 남도 봄의 금강을 흠뻑 즐겨보리라… <채희묵 chaehmoo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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