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아시아 인재지도가 바뀐다] <1>초스피드로 진행되는 작은 전쟁, 큰 전쟁

"핵심인재엔 백지수표도 안 아깝다"<br>전용기 띄우고 사장이 직접 삼고초려 마다안해<br>학사급까지 해외현지채용 인재확보 한발 빨라져<br>中등 외국은 '국가사업'인식 정부가 유치 앞장


“박 회장이 백지수표를 날린다고(?)” 지난해 말 여의도 증권가는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의 ‘백지수표’ 발언으로 들썩였다. “고급인력은 백지수표를 건네주더라도 데리고 오겠다”는 박 회장의 말은 누구라도 연봉 100만달러(10억원)를 거머쥘 수 있다는 꿈을 현실로 성큼 다가오게 만들었다.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유명 펀드매니저들이 지금 미래에셋에서 마음껏 실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도 이처럼 국적과 나이를 따지지 않고 고급두뇌를 찾아 나선 박 회장의 각별한 관심 덕택이다. 글로벌 인재전쟁은 적과 아군이 따로 없는 무한경쟁이다. 이 전쟁에서 밀린다면 기업과 국가의 미래마저 불투명해진다. 기업간의 인재 쟁탈전이 작은 전쟁이라면 국가간의 인재 쟁탈전은 큰 전쟁이다. 세계 곳곳에서는 지금 미래경쟁력의 핵심인 인재를 둘러싼 경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다. ◇핵심인재는 기업의 미래=노인식 삼성 전략기획실(옛 구조조정본부) 인사지원팀장(부사장)의 양복 안주머니에는 S(슈퍼)급 핵심인력 목표와 현황에 관한 보고서가 항상 준비돼 있다. 이건희 회장이 언제 어디에서 챙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지난 2002년 사장단회의에서 “앞으로 내 자신의 업무 절반 이상을 핵심인재 확보에 두고 사장단들이 얼마나 챙기고 있는지 평가하겠다”며 핵심인재 경영을 선포했다. 실제 삼성은 이후 사장단 평가항목의 30%를 핵심인재 확보에 두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조차도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고 있는 삼성 인재경영의 특징은 핵심인재를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핵심인재라면 단 1명을 위해서라도 전용기를 띄우고 사장이 직접 찾아가는 삼고초려도 마다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인재유지정책이다. “핵심인재를 내보내는 것은 정말 나쁘다. 20명의 핵심인재를 확보하는 것보다 10명을 내보는 게 더 나쁘다”는 이 회장의 인재유지론 때문이다. 삼성이 이처럼 핵심인재 확보에 총력전을 펼치는 이유가 뭘까. 바로 반도체 이후 삼성의 미래를 찾기 위해서다. 연봉 150만달러를 아낌없이 주더라도 핵심인재의 아이디어나 기술이 15만 삼성 직원들의 미래를 결정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발 빨라야 승리한다=과거 사기문제 때문에 글로벌 인재확보에 몸을 사렸던 국내 기업들의 인재 채용전략도 바뀌고 있다. 채용국가가 갈수록 다양해지고 인재유치단 규모도 커지는 등 입도선매 전략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처음으로 미국ㆍ캐나다 등 현지에서 학사급 인력까지 현지 채용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LG전자는 북미에 한정됐던 인재풀을 유럽ㆍ일본ㆍ인도ㆍ러시아 등으로 확대했다. 해외 거점지역에 대한 철저한 현지화로 승부를 보겠다는 전략이다. 현대차도 북미 지역 위주의 해외 고급인력 선발에서 올해 유럽까지 사냥범위를 넓혔다. SK그룹은 글로벌 성장 전략을 위해 아예 중국ㆍ베트남ㆍ인도 등에서 현지 외국인을 채용할 계획이고 포스코도 해외 현지에서 채용한 외국인 인력을 국내에서 일정기간 체계적인 훈련을 시킨 뒤 다시 현장에 배치하고 있다. 특히 포스코는 2003년부터 중국 베이징대ㆍ칭화대 등의 석사급 인력 12명을 뽑아 현장에서 실무교육을 하고 있다. 이들은 국내에서 최소 3년간 중국 전문가로서의 체계적인 교육을 거쳐 현지법인에 파견될 예정이다. ◇인재유치는 국가사업=한국은 기업 차원에서 인재전쟁에 나서고 있지만 중국 등 외국의 경우 일찍부터 ‘국가사업’을 내세워 정부가 앞장서 뛰어들었다. 중국 인재유치의 상징은 지난해 중국의 경제인으로 선정된 덩중한(鄧中翰) 중싱웨이전자 회장. 베이징 과학기술대를 졸업하고 92년 미국 UC버클리로 건너가 IBM에서 반도체설계 분야를 근무한 덩 회장은 실리콘밸리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99년 중국 정부의 끈질긴 설득으로 귀국한 덩 회장에게 중국 신식(정보)산업부는 사상 첫 벤처투자로 1,000만위안(12억7,000만원)을 선뜻 내줬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세계적인 멀티미디어 이미지 프로세서 반도체 회사인 ‘싱광반도체’이다. 정부가 숨어 있던 덩 회장을 유치해 중국 IT산업의 발판을 만든 것이다. 자원 블랙홀인 중국은 전세계로 진출했던 중화인재를 다시 불러들이고 있다. 중국의 인재 유치정책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의식주와 자녀교육문제 등을 한꺼번에 해결해주는 그린패스(Green Path)를 갖고 있는 해외파는 베이징에서 자동차 세금도 한푼 내지 않는다. 해외에서 학위를 받은 유학생은 창업관련 세금도 면제받는다. 해외파가 회사를 세운다면 정부는 사흘 만에 창업 도장을 찍어주고 대학 소개, 직원 채용까지 세심하게 배려해준다. 최근에는 인도 출신 유학생들의 유턴도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인도인들은 인텔이나 마이크로소프트 등 실리콘밸리의 20%를 차지할 정도이다. IT 본고장에서 기술력을 쌓은 그들이 인도 경제성장과 함께 뉴델리ㆍ뭄바이ㆍ첸나이로 속속 돌아가고 있다. 세계가 지금 인도와 중국의 무한한 성장 잠재력에 잔뜩 경계심을 갖고 있는 것도 바로 이들의 막강한 브레인 파워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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