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 1,000억엔서 올해 3,000억엔 돌파/차관 규모도 지난해 6,000억엔으로 급감/외자규제철폐 등 자구노력에 엔저 겹쳐개발도상국이 엔화 갚기를 본격화하고 있다. 일본 엔화는 개발도상국, 특히 아시아 역내 경제발전의 명실상부한 「자금젓줄」 역할을 해왔던 통화. 90년대초 1천억엔에도 못미쳤던 개도국의 엔차관 상환액은 지난 95년 2천5백억엔을 기록한데 이어 올해에는 3천억엔을 돌파할게 확실해지고 있다. 오는 2010년께는 95년의 3.4배 수준인 8천6백억엔에 이를 것이라는게 최근 니혼게이자이(일본경제)신문의 전망이다.
일본정부가 해외경제협력기금(OECF)이라는 이름으로 개도국에 대한 차관을 제공하기 시작한 것은 1966년부터. 95년말 현재 대출잔고는 8조6천억엔에 이른다. 차관의 형식은 거치기간 10년을 포함, 30년 후에 상환하는게 통례였다. 일본정부는 매년 9천억엔대를 차관항목으로 예산에 편성해왔고, 80년대말까지 아시아국 사이엔 이 자금을 한푼이라도 더 얻기위한 「아귀다툼」이 벌어지곤 했다. 이같은 상황은 그러나 90년대 들어서며 돌변했다. 91년 8천9백99억엔으로 피크에 이르렀던 차관규모는 지난해 6천억엔대까지 미끄러졌다. 그나마 상환된 액수를 빼고나면 4천억엔 정도에 불과하다.
엔차관의 급감과 상환액 급증은 우선 지난 60∼70년대에 돈을 빌리기 시작한 인도네시아 등의 상환기간이 만료되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 최대 채무국중 하나인 중국의 상환기한이 도래한다. 한국과 말레이시아 등 상환일자가 아직 다가오지 않은 국가도 조기상환에 나서고 있다.
상환러시의 이면에는 물론 아시아국이 최근 실시중인 외자규제 철폐 등 외환시장의 개혁노력이 자리하고 있다. 외자규제 철폐로 개도국내 달러유입은 촉진되고, 개발사업의 자금여력도 그만큼 충분하게 된 것이다. 이는 자연 엔화에 대한 수요감소로 연결됐다.
지난 95년의 「초엔고」도 엔화에 대한 상환의지에 불을 땡겼다. 엔화가치의 상승 만큼 채무국들의 상환부담은 늘어나기 마련이다. 채무국들은 최근 엔화가 다시 하락세로 돌아서자 이 기회에 빚을 청산, 환리스크를 최소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엔화가 언제 다시 상승세로 돌아설지 모르기 때문이다.
차관의 이같은 감소에 대해 일본정부도 발바르게 움직이고 있다. 개도국의 개발사업에 대한 자금대출은 민간분야에 넘겨주는 대신, 교육과 환경쪽으로 대출방향을 돌리겠다는게 일본정부의 방침이다. 물론 이를두고 일본이 개도국의 새로운 분야에 「돈을 부어」 영향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속셈이라는 조심스런 우려도 있기는 하다.<김영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