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골프 에피소드] (1) 콧수염사나이의 복수

골프는 룰과 에티켓의 경기, 자칫 방심하다가 실격당하는 경우도 있다. 경험이 풍부하고 노련한 중견골퍼들도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실격의 아픔을 겪는다. 알게 모르게 규칙위반을 자주 하는 아마추어 골퍼들, 골프경기쯤이야 하면서 얕잡아 보는 사람들에게 유명 골퍼들의 실격 에피소드가 그저 남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실격」에 관한 에피소드를 연재한다.부채를 펴서 거꾸로 놓은 것처럼 콧수염을 멋지게 기른 크레이그 스태들러라는 뚱뚱이 골퍼가 있다. 1953년생으로 75년 프로무대에 진출했고 메이저대회인 마스터즈우승을 포함해 프로통산 12승을 거뒀다. 175CM 키에 100KG에 이르는 거구인 그는 특히 점점 넓어지는 이마와 툭 튀어나온 배가 아주 인상적이다. 스태들러는 95년8월 골프클럽 대신 줄톱을 들고 샌디에이고에 있는 토레이 파인스골프코스에 나타났다. 그리고 지난 87년 아주 어이없이 실격을 당했던 아픔을 쓱싹쓱싹 잘라버렸다. 사연은 이렇다. 87년 이 골프장에서 메이저대회인 미 PGA선수권이 열렸는데 스태들러는 2라운드까지 공동선두를 달리며 5년만의 메이저 우승을 기대하며 한껏 부풀어 있었다. 3라운드 13번홀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14번홀 티 샷한 볼이 러프에 있는 작은 나무아래로 굴러 들어가면서 스태들러의 수난은 시작됐다. 무릎을 꿇어야만 세컨 샷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 땅은 전날 내린 비때문인지, 아침 이슬탓인지 축축히 젖어 있었다. 스타일이 구겨질 것을 염려한 스태들러는 클럽도 닦고 땀도 닦기 위해 캐디가 들고 다니는 커다란 수건을 바닥에 깔고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기가막힌 트러블 샷으로 위기를 벗어났다. 스태들러의 샷이 그날 저녁 NBC방송을 통해 대회 하이라이트로 방영될 때까지 스태들러는 위기를 넘겼다는 자신감에 부풀어 우승에 대한 집념을 다지고 있었다. 그러나 방송된 지 불과 1분이나 되었을까. 시청자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스태들러가 수건을 깔고 샷을 한 것은 「스탠스를 유리하게 만든 것이므로 2벌타」라는 것, 그리고 스태들러는 벌타를 기록하지 않고 스코어카드에 사인해버렸기 때문에 「스코어 오기」로 실격이라는 것이다. 결국 스태들러는 눈물을 머금고 4라운드를 갤러리로 남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골프장 토레이 파인스 골프코스가 95년 다시 미PGA챔피언십을 열면서 스태들러에게 그 원한의 나무를 베어버리지 않겠냐고 제안해 온 것이다. 스태들러를 위로하기 위해 일부러 멀쩡한 나무를 자르는 것이 아니라 그 나무가 자연 고사 상태에 들어갔기 때문에 어차피 없애야 했기 때문이다. 스태들러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고 클럽 대신 줄톱을 들고 골프코스에 나타나게 된 것이다.【김진영 기자】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