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에 대한 국민의 염원은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경제성장 엔진의 재점화와 국민행복 증진이라는 과제가 바로 그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도 동일하다. 아버지인 고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고속성장에 대한 추억과 함께 양극화 해소, 삶의 질 향상이 시급하다는 시대적 요구가 맞물려 대선에서 이길 수 있었다.
어느 때보다 기대 높지만…
그러나 둘 다 쉽지 않은 과제다. 성장과 행복의 증진이라는 정책목표가 서로 충돌할 수도 있다. 일할 수 있는 환경도 좋지 않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촉발된 세계적인 경제침체 속에서 원화가치가 올라 성장과 수출 여건이 갈수록 나빠지고 양극화 문제와 취업난도 좀처럼 풀리지 않는 난제로 자리잡았다. 오르는 물가로 서민생활이 핍박해지고 가계부채는 진작부터 위험수위에 도달한 상태다.
가장 큰 문제는 모든 정책과제가 딜레마에 처해 있다는 사실이다. 가령 집을 가져도 빚에 허덕이는 하우스푸어 대책을 마련하려니 부동산을 자극할 위험이 뒤따른다. 공약인 노인 기초연금을 시행하는 데도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재원마련 방법에서 오락가락하는 양상을 보인 끝에 내놓은 방안마저 새로운 논란을 낳고 있다는 사실은 정책실행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말해주는 사례다.
국민들이 박 대통령에게 거는 기대마저 짐이 될 수 있다. 당장 실질성장률을 잠재성장률 이상으로 끌어올릴 묘안을 찾기 어려운 가운데 '아버지처럼 경제를 살려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자체가 부담이다. 기대를 충족시켜줄 실질적 수단이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다. 서울경제신문 1980년 3월22일자에는 '1979년 은행 총대출의 80%가 정책자금'이라는 톱기사가 실려 있다.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은행대출마저 쥐락펴락할 수 있었던 시절과 달리 요즘은 정부가 권유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정부의 수단은 많지 않아
언론과 기업ㆍ노사관계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던 시대는 오래 전에 지나고 복잡다단해진 구조 속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시대는 변한 반면 박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 권위주의 시대의 그림자가 엿보인다. 내각과 청와대 참모진 인선이 그렇고, 주요 정책발표에 적용된 비밀주의가 그렇다. 심지어 청와대 비서진을 발표하지 않는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판이다.
박근혜 정부의 성공 여부는 우리 경제의 미래는 물론 정치권 지도까지 결정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경제성적이 그저 그런 수준에 머물거나 국민들이 과거 권위주의 시대로 회귀한다고 여긴다면 집권 5년의 공과를 넘어 개발연대에 대한 평가까지 도마 위에 오를 수 있다. 이는 보수진영 전체의 기반약화를 초래하고 정치지형 변화의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 피부로 느낄 만큼 경제를 되살리기에는 대내외적 여건이 어렵고 정치적 리스크에 둘러싸인 상황에서 새 정부가 택할 길은 세 가지다. 천천히, 정직하게, 그리고 원칙을 중시하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국민이 신뢰할 수 있도록 주요 정책의 재원마련 방법과 스케줄을 제시하고 단시일 내에 경제성적을 내기가 왜 어려운지 국민에게 설명해 동의를 구하라는 주문이다.
원칙과 대화 동시에 중시해야
다행스러운 것은 박 대통령이 원칙과 신뢰를 중시해왔다는 점이다. 정치 초년병 때부터 원칙을 강조해온 박 대통령이 사람을 등용하고 배치하는 것부터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원칙을 지킨다면 국민들의 신뢰가 따르고 정책추진력도 힘을 받기 마련이다. 박 대통령 재임기간에 보수가 원칙을 중시해 보수다운 보수로 자리잡고 인정받을 수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공적으로 남을 만하다.
우리는 박 대통령의 시대가 성공으로 기록되기를 국민과 함께 축원한다. 앞으로 5년 동안 중산층 복원과 국민행복 증진, 보수와 진보의 건강한 동행을 통한 성숙한 사회로의 진입이 박근혜 정부의 과제로 남았다. 국민들도 막연한 기대에 머물 게 아니라 새 정부의 방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부디 이번에는 국민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지 않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