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의 대선비자금 사건으로 촉발된 정치개혁 논의가 공론(公論)이 아니라 공론(空論)으로 흐르고 있다. 모든 정당들은 후원회 폐지, 지구당폐지, 중앙당축소, 중대선거구제도입 등의 방안을 개혁안인 양 앞다퉈 제시하고 있다.
정치자금 수수의 또 다른 상대방인 재계 또한 개별기업의 정치자금 기탁행위 금지 및 경제단체ㆍ중앙선관위를 통한 기탁, 지정기탁제의 도입, 정치자금규모의 주주총회 의결, 정치권의 고해성사뒤 기업의 정치자금관련 불법회계에 대한 사면 등을 요구했다.
정치자금 수수 쌍방이 내놓은 개혁안은 현재 두 진영이 처해있는 곤경을 벗어나기 위한 국면돌파용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을 준다. 논의의 진실성은 물론이고, 실천의지도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개혁안 자체가 안고있는 문제가 그러려니와 개혁안의 대안으로 제시하는 방안들이 그렇다.
우선 정치권 개혁안의 경우, 후원회ㆍ지구당폐지, 중대선거구제도입 등의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 법인세 1%의 정치자금화와 선거의 완전공영제다. 연간 법인세 세수실적이 17조규모이므로 다 받으면 1,700억원, 일부 제척대상을 제외하더라도 최소 1,000억원은 거둘 수 있어 현재 후원회를 통해서 걷는 900억원 보다 많아진다. 선거완전공영제가 실시되면 국회의원후보들은 800억원, 대통령후보들은 600억원 정도를 세금으로 지원 받는다.
지구당을 폐지한다면서 사무소를 두겠다고 하는 것이나, 중대선거구제를 말하면서 의원수를 늘릴 궁리만 하는 것을 보면 개혁의지 조차 의심스럽다. 개혁을 하려면 고비용 정치구조를 혁파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실제로는 현재의 고비용구조를 보다 안정적으로 확보하겠다는 내용이다. 게다가 오랜 숙원사업을 모두 이룬 정치권이 앞으로 정치자금을 안받는다는 보장도 없다.
재계가 내놓은 안도 공허하기는 마찬가지다. 지정기탁금제만 하더라도 그것이 폐지된 이유를 알고 나 하는 소린지 알 수가 없다. 지정기탁제는 여당한테만 지정이 되기 때문에 없어진 것이다. 아무리 정치상황이 바뀌었다지만 지금의 분위기에서 기업들이 여야를 구분하지 않고 자유스럽게 정당을 택해 정치자금을 줄 수 있을 것인지 재계는 자문(自問)하기 바란다. 주주총회에서 정치자금 규모를 정하자고 했는데 단 한푼의 정치자금이라도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주주들이 과연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정치개혁은 정치자금 기부자와 금액, 그리고 사용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위반행위에 처벌을 강화하는 것에 달려 있다. 정치권과 기업 간에 공개할 수 없는 사정이 존재하는 한 정치부패는 근절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논의의 초점을 거기에 맞추어야 하고, 논의의 주체도 부패한 정치권이 아닌 중립적인 기구가 맡아야 한다.
<김영만 주미 한국상의 명예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