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격변기의 보험산업/손보] 유혈경쟁 돌입

각사는 자동차 등록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신규 가입자를 끌어들이기보다는 경쟁사 고객을 빼앗는 게 훨씬 수월하다는 판단에 따라 대규모 물량 공세에 나서고 있다. 보험료를 깎아주는 것은 물론, 각종 선물과 서비스를 내걸며 고객들을 유혹하고 있다.대형 손보사들은 한편으로는 물량공세로 후발사들의 시장을 빼앗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은행 등과의 제휴을 통해 「세력동맹」을 형성하는 등 21세기 금융시장에서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경쟁이 달아오를수록 손보업계 구조조정이 임박했다는 징후가 두드러지고 있다. 덩치가 작고 실탄(자금)이 부족한 일부 손보사의 경영이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더이상 나눠먹기는 없다= 일부 보험사 영업사원들은 경쟁사 자동차보험 가입 고객을 빼앗기 위해 보험료의 30%까지 깎아주겠다는 등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각 손보사들은 『보험료 할인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펄쩍 뛰고 있지만 대부분이 암암리에 할인판매를 묵인하거나 적극 조장하고 있다. 심지어 일부 회사는 최고 경영자까지 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고객을 빼앗아오라』고 독려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일부 경쟁사가 새로운 고객을 끌어들이는데는 열심이지만 관리는 허술한 경우가 많아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있다』고 말한다. ◇흔들리는 시장질서= 이석용(李錫龍) 손해보험협회회장은 『시장질서 문란행위를 바로잡기 위해 각사 대표들에게 자제를 당부하고 있지만 잘 먹혀들지 않고 있다』며 『업계의 공멸을 막기 위해서라도 특단의 조치를 강구해야 겠다』고 밝혔다. 보험사들의 제살깎아먹기식 영업확대는 채산성 악화로 이어져 업계의 존립기반을 흔들 것이란게 李회장의 지적. 실제로 11개 손보사의 지난 4~5월중 사업비율(수입보험료 가운데 보험영업을 위해 지출한 각종 비용)은 지난해 같은 기간의 28.4%에서 32.0%로 3.6% 포인트 늘어났다. 이런 가운데 손해율(수입보험료 가운데 사고발생으로 지급한 보험금)은 지난해의 58.2%에 비해 6.9% 포인트 올라갔다. 결국 각 보험사가 손해율 급증으로 계약자에게 내준 보험금이 크게 늘어나는 와중에서도 시장점유율 싸움에 매달리고 있는 셈이다. 이는 타협과 양보로 시장을 나눠먹던 보험업계의 오랜 전통과 전혀 다른 양상이다. ◇우량사, 시장 싹쓸이 채비= 일부 우량사들은 내년 4월로 예정된 보혐료율 자유화를 앞두고 「시장 싹쓸이」에 나설 태세여서 중견이하 보험사들을 공포에 떨게 하고 있다. 새로 가입하는 고객들에게 보험료를 깎아주는 것은 물론 주유권이나 상품권 등 경품을 제공하면서 경쟁사들의 고객을 빼앗겠다는 것. 결국 보험사간 경쟁이 「돈보따리 싸움」으로 번지면서 후발사를 대거 탈락시키는 손해보험업계 구조조정의 신호탄이 될 것이란 전망이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 4~5월중 손보사들의 사업비가 지난해에 비해 3.6% 포인트 늘어난 것으로 집계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각사가 온갖 경로를 동원해 영업조직을 집중지원하고 있어 집행된 사업비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란 지적이다. 사업비는 소총수(보험모집인)의 실탄이다. 실탄이 부족하면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 ◇제휴 마케팅 열기= 요즘 손해보험사들의 화두는 단연 「은행잡기」다. 보험사들이 고객과 지점을 많이 확보하고 있는 거대은행을 파트너로 잡아 공동 상품을 내놓는 「제휴 마케팅」이 붐을 이루고 있다. 고객이 제휴상품에 가입하면 은행부담으로 보험에 가입시켜준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보험사와 은행간의 이같은 제휴가 금융빅뱅의 서막일 뿐이라고 말한다. 결국에는 보험사가 은행을 거느리고, 은행에서 보험상품을 파는 「영역없는 전쟁」이 벌어질 것이란 예측이다. 아직까지 생명보험사와 은행간의 제휴형태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보편화된 방카슈랑스(BANCASSURANCE)나 지주회사 개념이 조만간 우리나라에도 상륙, 「금융 백화점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방카슈랑스 시대 열리나= 손보사들이 모델 케이스로 삼는 것이 프랑스식 「방카슈랑스」개념이다. 방카슈랑스란 은행(BANK)과 보험(INSURANCE)을 합친 말로, 은행창구에서 보험상품을 판매하는 것. 국내 손해보험-은행 제휴는 아직까지는 본격적인 방카슈랑스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삼성화재와 조흥은행이 전략적 제휴를 맺고 「물가연동형 상품」을 공동개발키로 하면서 본격적인 방카슈랑스 시대가 조만간 막을 올릴 전망이다. 이 상품은 물가상승 폭에 맞추어 조흥은행 예금의 이자율을 조정하되, 삼성화재의 보험을 통해 차액을 메우는 형식. 이같은 전략적 제휴는 다른 보험사와 은행에도 크게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무한경쟁 시대의 전주곡= 변화는 보험과 은행간 판매협조(대행 판매)→합작법인 설립→인수합병→지주회사 설립 등으로 이어지면서 궁극적으로는 보험과 은행간의 경계선을 지워버릴 것으로 보인다. 금융연구원 정재욱(鄭宰旭) 연구위원은 『금융기관이 고객의 욕구에 맞는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영역구분이 트여야 할 것』이라며 『보험사로선 판매채널의 고비용-저효율 구조를 타파하기 위해서라도 비용 부담이 적은 은행에 접근할 수 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손해보험사들은 그동안 모집인들의 「안면장사」와 「친인척 공략」에 전적으로 의존해온 것이 사실. 그러나 자금조달에 코스트(비용) 개념이 높아지면서 이같은 전통적 방식은 한계에 봉착했다는게 업계의 인식이다. /한상복 기자 SBHAN@SED.CO.KR

관련기사



한상복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