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연월차 휴가제 축소등 복지수준 후퇴는 안돼재계-年휴가일수 안줄이면 산업경쟁력 약화우려
최근 정부가 '주5일 근무제'에 대해 노사가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더라도 올 정기국회에서 입법화 하겠다고 밝히자 근로시간 단축을 둘러싼 노사정간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노동계와 재계는 근로시간 단축에 대해 총론에는 찬성하고 있다. 그러나 연월차 휴가조정, 생리휴가 존폐 등 핵심쟁점의 이견을 좁히지 못해 언제 도입될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복지후퇴는 안돼"
노동계는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그러나 근로자들의 임금이나 복지 등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근로조건 변화에 대해서는 절대 양보를 할 수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한국노총은 "늦은 감이 있지만 정부가 주5일제 근무제 도입을 적극 추진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라면서 "그러나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복지수준의 후퇴는 있을 수 없다"고 못박았다.
민주노총은 "주5일 근무제 도입을 앞두고 재계에서 연ㆍ월차 휴가제 축소 등을 주장하고 있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 "정부의 근로시간 단축이 근로자들의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야 입법취지에 부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동계는 월차휴가를 폐지하고 연차휴가만 남겨두되 연차도 근무연수와는 관계없이 15일만 인정하자는 재계의 주장에 대해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다.
손낙구 민주노총 교육선전실장은 "월차는 전체 근로자의 55% 이상에 달하는 비정규직의 유일한 휴가인 만큼 근로시간이 단축되더라도 현행대로 유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생리휴가제의 경우 전체 직장여성의 70%가 비정규직인 만큼 현행대로 유지해야 할 것"이라면서 "근로자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서는 안될 것 "이라고 주장했다.
시행시기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 노동계는 현 정부가 주5일제 근무를 약속한 만큼 올해 입법화를 통해 내년 7월부터 대기업이 먼저 도입하고 2004년까지는 모든 사업장에 적용하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
초과근무(4시간)에 대해서는 통상임금의 25%를 가산하고 4시간 이상이 될 경우에는 50%의 가산금을 주자는 재계의 주장에 대해 "초과근무에 대한 할증 폭을 축소하는 것은 근로자들의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며 반발하고 있다.
◇'산업경쟁력 약화' 우려도
전경련 등은 정부의 주5일 근무제 도입은 원칙적으로 찬성하지만 노동계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경영자총협회는 "현행 휴가제를 그대로 둔 채 주5일 근무제를 도입하면 전체 휴가일수가 선진국보다 많아진다"면서 "이는 산업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총은 "주 5일 근무로 주당 근로시간이 현행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줄어들면 연간 휴가 일수가 남성 근로자 기준으로 153~163일로 늘어나 선진국인 미국(142일), 일본(129~139일), 영국(132~137일)보다 많아지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경련도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전경련 관계자는 "주5일 근무제를 도입하려면 연ㆍ월차 및 생리휴가를 폐지하고 여장근로에 적용하는 할증 임금률도 50%에서 25%로 낮추는 등 신축적인 조정이 따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범위를 어디까지 적용할지도 고민거리다. 노동계 일부에서 조차 "경영이 어려운 한계기업까지 일률적으로 도입할 경우 비용부담을 견디지 못해 도산으로 몰아갈 수 있다"는 점을 수긍하는 분위기다.
주5일 근무제는 노사합의를 통해 자율적으로 결정한 기업부터 점진적으로 실시하자는 방안이 현실적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학계는 "실익 의문"
근로시간 단축 등은 근로자들을 위해 필요하지만 정치적으로 결정되거나 특정한 정책효과를 내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와 함께 국내 경제 전반에 걸쳐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주5일제 근무제 도입은 기업의 부담을 가중시킬 뿐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실익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신중론도 제기되고 있다.
법정 근로시간은 노동복지 향상을 위해 가능한 줄어드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휴가제도나 임금제도 등 근로조건을 둘러싼 노사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추진하는 것은 정부나 정치권이 노사의 갈등을 유발하는 또 다른 불씨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특히 일부에서는 국민관광 진흥이라는 관점에서 근로시간 단축을 접근하는 정부의 자세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국민관광 진흥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주5일제 근무를 파급 시킬 문제들이 선결되지 않고서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박상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