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기사의 맹점 가운데 하나가 역끝내기에 대한 유혹이다. 바둑이 집의 수효 경쟁이라는 점에 비추어볼 때 역끝내기는 그야말로 참을 수 없이 매혹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상대가 두면 거의 절대적으로 선수가 되는 자리를 역으로 두어치울 때의 통쾌함은 바둑이 주는 즐거움 가운데 큰 몫이 된다. 그런데…. 역끝내기에 대한 유혹이 종종 대세를 그르친다. 지엽적인 이득에 몰두하느라고 대세점을 놓치거나 급한 자리를 외면하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구리가 흑1로 우변 백대마를 위협했을 때가 문제의 순간이었다. 아직 백대마가 미생이므로 백은 가에 하나 받아두는 것이 보통인데 최철한은 좌변을 흑이 역끝내기를 해버리는 것에 신경이 쓰였다. 참고도1의 흑1,3으로 두면 백으로서는 여간 약오르는 일이 아니다. 그것을 예방하기 위해 둔 수가 실전보의 백2였는데 이 수가 패착이 되었다. 흑3으로 안형을 빼앗은 수가 통렬했다. “결정타를 맞았습니다. 백이 헤어나기 어렵겠는데요.” 해설실의 김수장 9단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흑13은 안전 운행. 사실은 이 수로 참고도2의 흑1 이하 21로 판을 끝내 버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구리는 어떻게 두어도 이긴다고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