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가까이 이어져오던 우리나라의 경기순환 사이클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과거 경기확장 국면이 진행될 때는 최대 30개월 넘게 이어졌지만 최근 들어 이 기간이 부쩍 짧아진 것이다. 최근 3년 동안에는 불과 1년 안팎으로 좁아진 모습도 엿보인다. 일각에서는 전통적 의미의 ‘경기순환 주기’가 아예 깨진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는 상황이다. 경기는 빠르게 냉ㆍ온탕을 반복하고 있는데 정책 대응은 과거의 순환 모형에 얽매여 있는 셈이다. ◇경기순환, 단기 사이클 고착=2일 한국은행과 통계청, 민간 연구기관 등에 따르면 지난해 2ㆍ4분기부터 이어져온 경기의 상승흐름이 조만간 정점에 이를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면서 ‘단기형 경기 사이클’이 굳어진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경기가 올 하반기 초 하강 곡선으로 돌아설 경우 현재의 확장 국면이 13~14개월 만에 꺾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단기형 경기모형은 지난 88년 이후의 경기순환 모형을 분석해본 결과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통계청의 ‘동행지수순환변동치’를 보면 이 기간 경기순환 주기는 평균 27개월에 달했다. 우선 올림픽 직후부터 진행된 제5 순환기의 경우 89년 7월 경기 저점을 시작으로 92년 1월 고점까지 30개월 동안 확장 국면을 맞이했다. 특히 6순환기(93년 1월~96년 3월)에는 확장 국면이 무려 38개월에 달했다. 하지만 이런 장기 변동 모형은 환란 후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98년 8월 경기 저점을 시작으로 진행된 제7 순환기의 경우 2000년 8월 고점에 이르기까지 24개월 동안의 확장 국면으로 종전에 비해 14개월이나 짧아졌다. 이어 제8 순환기(2001년 7월~2002년 12월)는 불과 17개월에 머물렀을 정도로 순환 주기가 지극히 짧아졌다. 이 같은 단기 경기 사이클은 IT 경기가 활발해질수록 공고해지고 있다. 특히 2003년 7월 경기 저점을 시작으로 진행된 확장 국면은 이듬해 2월 고점에 이르기까지 불과 7개월 동안만 이어졌다. 지난해 4월부터 시작된 상승 흐름이 1년 조금 넘은 기간 만에 끝나는 것도 이 같은 흐름과 무관하지 않은 셈이다. ◇대순환이냐, 소순환이냐=짧아진 경기 사이클 속에서 하반기에 맞이할 것으로 보이는 경기하강 국면이 전체 순환 모형 속에서 ‘소순환’이냐 ‘대순환’에 속하는 것이냐도 관심으로 등장하고 있다. 경기가 소순환 속에서 하강 국면을 그릴 경우 상승 흐름이 계속 이어지는 ‘소프트패치(상승 속 일시 하강)’를 의미하는 반면 대순환일 경우 장기 하향 국면으로 바뀔 것임을 뜻한다. LG경제연구원은 이날 내놓은 경기진단 보고서에서 “ 우리 경제는 올 하반기 정점을 형성할 가능성이 있지만 둔화폭이 크지 않은 소순환이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기회복 기조를 유지한 상태에서 상대적으로 짧은 하강기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침체’가 아닌 ‘조정’에 머물 것이라는 다소 낙관적 관측이다. 하지만 비교적 긴 하강 곡선을 그릴 것이라는 해석도 적지않다. 정부에서는 이미 올해보다 내년 경기가 더 우려된다는 목소리도 불거져 나오는 상황. 이 경우 하강곡선이 적어도 1년가량은 진행될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특히 일부에서는 현 경기상황이 2002년 12월 고점을 찍은 후 그리기 시작한 하강 곡선의 큰 그림에 포함돼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장기 경기 순환모형을 보면 2002년 12월 이후 드러난 경기 상승 흐름은 그 폭이 그리 크지 않았다. 순환 주기가 지나치게 짧은데다 진폭 자체도 낮은 수준에서 오르내림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특별하게 규정하기는 힘들지만 전통적인 경기순환 모형이 바뀐 만큼 정부 정책도 이에 걸맞게 수정ㆍ보완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