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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 서울 독립운동 유적지, "대한독립 만세" 그날의 함성 귓가에 들리는 듯

서대문독립공원 내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전경. 일제강점기 이곳에 4만명의 독립운동가가 수감되고 그중 900여명이 사망했다. 매년 3월1일 각종 행사가 열려 순국선열들을 추모하고 독립정신을 되새긴다.

서대문형무소 내 옥사 내부 모습. 위쪽에 간수의 모형이 있어 당시의 분위기를 풍긴다.

탑골공원 내 팔각정 모습. 1919년 3월1일 학생대표가 이곳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남산공원 내 안중근 의사의 동상. 뒤쪽에 보이는 유리벽 건물이 안중근의사기념관이다.


● 서대문형무소역사관, 900여명 순국 슬픈 역사의 흔적

● 안중근 윤봉길의사 기념관, 의거 현장 밀랍인형 등으로 전시


● 탑골공원, 시민 학생들 모여 3 1 운동 시작

● 효창공원, 김구 등 임시정부 요인 유해 묻혀


달력의 빨간 날 하나에 울고 웃는 사람들에게는 올해 3·1절은 다소 실망스럽다. 빨간 날이 토요일이기 때문이다. 천금 같은 휴일이 하나 사라지는 기분이다. 하지만 3·1절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면 오히려 기회가 되지 않을까. 3월1일은 물론 2일도 연휴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연휴를 맞아 무엇을 할까 고민이라면 3·1절의 의의에 맞게 독립운동 유적지를 둘러보는 가족여행을 추천한다. 서울에는 많은 독립운동 유적이 있다. 그리고 모두 지하철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는 역사 교육을, 엄마 아빠에게는 일상을 벗어난 달콤한 휴식을 줄 수 있는 서울 내 독립운동 유적지를 소개한다.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을 나오면 서쪽 안산 자락에 붙어 서대문독립공원이 있고 여기에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 펼쳐져 있다. 지난 1908년 일본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경성감옥'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후 1945년 해방까지 국권을 되찾기 위해 싸운 인사들을 가두고 고문한 곳이다. 이름은 경성감옥에서 서대문감옥으로, 이후 서대문형무소로 바뀌었다.

서대문형무소는 주로 독립운동가들을 대상으로 했다. 1911년 '105인 사건'으로 관련 인사가 대거 수감되면서 주목을 받았고 계속 옥사의 증축이 이뤄진다. 해방 직전인 1944년 당시 동시에 수감된 사람이 약 2,890명에 달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총 수감인원은 4만여명, 그중에서 900여명이 순국했다. 이 장소는 해방 후에도 사용됐다. '서울구치소'라는 이름으로 이번에는 주로 민주화운동 관련 인사들이 수감됐다. 1987년 서울구치소가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하면서까지 이런 상황이 이어졌다.

전성기에는 수십 동의 건물이 있었다는데 지금 남은 있는 건물은 10동이 안된다. 그동안 많은 숫자가 헐려나갔다. 1998년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 개관하면서 지금의 체제로 자리를 잡았다. 자주독립과 자유·평화수호 정신을 키우려는 교육현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과 서대문독립공원에서는 올해도 3·1절을 맞아 '3·1독립만세운동' 재연 퍼포먼스, 서대문역사어린이합창단 공연, 독립운동 관련 기념관 특별체험 등 다양한 공연, 전시와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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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내 독립운동과 관련된 기념관으로서는 백범김구기념관·안중근의사기념관·윤봉길의사기념관 등이 있다. 백범김구기념관은 용산구 효창동 효창공원 내에 있다. 상하이임시정부 김구 주석의 삶과 사상을 통해 근현대사를 이해하고 분단된 조국의 자주적·민주적·평화적 통일을 지향하는 취지로 2002년 오픈했다. 전시관은 2층 건물인데 1층에는 유년시절, 동학 및 의병 활동기를 담았고 2층에는 1919년부터 1945년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 시기를 이야기한다. 백범김구기념관의 설립은 다른 기념관에 비해 다소 늦었다. 건립장소 문제가 이슈였는데 당초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인근, 경희궁터 등이 물망이 올랐지만 이들 장소가 협소한 문제로 배제되고 그의 묘소가 있는 효창공원으로 최종결정을 봤다.

중구 남대문로5가 남산공원에는 안중근의사기념관이 있다. 1970년에 처음 건립됐는데 2010년 현재의 새 건물을 신축했다. 남산공원은 일제강점기 신사 참배를 강요당했던 조선신궁이 있던 자리다. 그 흔적을 안중근 의사의 혼으로 메우기 위해 이 장소가 선택됐다고 한다.

내부에는 1909년 만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할 당시 상황이 밀랍인형으로 전시돼 있고 조선 독립을 맹세하며 단지했던 상황도 연출돼 있다. 최근 일본 등과의 역사논쟁이 치열해지면서 안중근 의사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지고 있다.

서초구 양재동 양재시민의숲 남쪽에 윤봉길의사기념관이 있다. 현재 존재하는 기념관들 중에서는 이른 시기인 1988년에 건립됐다. 다른 기념관과는 다르게 민간단체인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사업회'가 국민 성금으로 건립해 서울시에 기부채납한 후 서울시, 지금은 서초구로부터 수탁 받아 관리운영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운영방식이 다른 국가기관 소유 기념관에 비해서는 불리하다. 서울의 남부에 위치해 접근도도 떨어진다. 최근 지하철 신분당선이 개통해 바로 접근할 수 있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다.

독립정신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공원도 있다. 대표적으로 탑골공원과 효창공원·도산공원 등이 그것. 종로 한복판에 있는 탑골공원은 3·1운동의 실질적인 발생지다. 당시 시민들과 학생들이 이곳에서 만세운동을 시작했으며 공원 가운데 있는 팔각정은 학생대표가 독립선언문을 낭독했던 장소다. 탑골공원의 역사 자체는 아주 오래됐다. 고려시대 흥복사라는 절이 있던 자리에 1465년(세조11) 원각사가 세워졌고 이후 연산군 때 폐사됐으나 1897년(고종34) 탁지부(지금의 재정부) 고문이던 영국인 존 브라운의 제안으로 공원으로 조성됐다. 서울시내에 세워진 최초의 근대공원으로 평가된다. 한때는 원각사 탑의 이름에서 파고다공원이라 했으나 1991년 옛 지명을 따 탑골공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국보 2호인 원각사지10층석탑이 공원 안에 있다.

용산구 효창동에 있는 효창공원에는 독립운동가들의 묘소가 집중돼 있어 숙연한 느낌을 준다. 원래는 조선 정조의 맏아들로 태어나 세자 책봉까지 받았으나 다섯살 때 요절한 문효세자와 몇달 후 죽은 그의 모친 의빈 성씨의 무덤이 있어 '효창원'이라 했다. 공원이 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40년. 일제는 두 무덤을 이전하고 공원으로 바꾸었다. 당시 공원 면적은 31만㎡로 공원 내에는 일본군 병력의 숙영지도 있었다.

해방 후 대부분의 시설이 철거되고 귀국한 이봉창·윤봉길·백정기 등 삼의사와 이동녕·조성환·차이석 등 임정요인들의 유해가 묻혔다. 김구 선생도 1949년 사망한 후 이곳에 안장됐다. 안중근 의사의 가묘도 있는데 유해가 발견될 경우 묻힐 장소다.

이곳이 임시정부 요인 등 독립운동가들의 메카로 등장하자 이승만 정부 때부터 공원의 성격 변화를 위한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다. 이후 공원에 운동장이 들어서고 반공투사위령탑·노인회관이 세워졌다. 박정희 정권 때는 골프장을 만들려는 시도도 있었다. 이와 함께 주변 시설에 잠식돼 공원 면적은 현재 12만㎡로 축소된 상태다.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도산공원은 이름 그대로 도산 안창호 선생을 기리는 공원이다. 공원은 1973년 조성됐으며 면적은 약 3만㎡다. 당시까지 망우리 공동묘지에 있던 안창호 선생의 유해가 공원으로 이장됐고 동시에 로스앤젤레스에서 부인 이혜련 여사의 유해도 이전해 합장했다. 서울시내 공원 중에서 그리 큰 규모는 아니지만 평지형 공원으로 접근성이 좋다. 도산의 탄생 120주년을 맞은 1998년 도산안창호기념관도 개관해 추모객들을 맞고 있다.

@s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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