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언제나 위기라고? 당신이 위기다


인간의 뇌는 기본적으로 위기에 익숙해 있지 않다. 아무리 비상착륙에 대비해 훈련을 많이 한 승무원이라도 막상 재난상황이 닥치면 꼼짝 않고 서 있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부상 승객들이 도와달라고 아우성을 치는데도 말이다. 이를 불신반응이라고 한다. 눈앞의 현상에 대해 아니라고 부정하는 태도다. 사고로 차가운 물속에 빠지면 사망자의 95%는 추위로 인해 참사를 당하는 것이 아니다. 상식과는 달리 대개 공포에 의한 쇼크나 심장마비로 죽음을 맞이한다. 낙하산 추락사고의 대부분 역시 아예 낙하산 끈을 당기지 않거나 너무 많이 지면에 내려온 상태에서 줄을 당기는 경우에 일어난다. 결정적인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돼버리는 현상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의 뇌는 위기에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위기상황을 염두에 두고 훈련을 통해서 조직이 완벽하게 준비될 수 있을까. 이를 과신하는 최고경영자들이 있다. 임직원들을 향해 늘 지금이 위기라고 부르짖는다. 매해 신년사에는 회사가 유례없는 경기침체를 맞이하고 있다. 반복된 위기 강조는 분명히 전술적 장점이 있다. 직원들을 더욱 더 긴장시키고 스트레스를 가해서 목표 이상의 성과를 덤으로 올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경영 악화의 원인을 외부로 돌려서 자신의 과실을 숨기고 인력과 비용절감에 수월한 환경을 도모하는 효과도 있다. 하지만 목적이 그뿐이라면 좀 위험하다. 기업경영이란 어차피 불확실한 환경에서 일어나는 게임이다. 불확실성에는 줄일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다. 가령 주머니에 담긴 구슬의 구성비는 시간만 주어지면 조사와 분석을 통해 근접할 수 있다. 이는 최고경영자가 줄일 수 있는 불확실성이다. 그래도 기업이 어떤 구슬을 뽑느냐 하는 것의 확률은 여전히 줄어들지 않는다. 조직의 수장이 혼자 번민하고 맞닥뜨려야 할 과제다. 위기는 늘 찾아온다. 그 자체를 피할 수 없다. 줄일 수 없는 불확실성의 영역이 있기 때문이다. 조직으로 하여금 완벽한 준비를 강요하고 늘 위기라고 반복해서 외쳐대는 최고경영자라면 그 진부함과 상상력의 결여에 더해서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을 하부에 미루는 직무유기가 아닌지 솔직해져야 할 일이다. 기업 성과는 최고경영자의 명령이나 일장연설을 통해 나오지 않는다. 외부를 조망하는 최고경영자의 상식 수준의 혜안과 스스로의 한계 설정, 그리고 이를 납득하고 수장의 고뇌에 공감하는 직원들이 함께 이뤄나가는 것이다. 위기라고 입에 달고 사는 최고경영자, 당신이 진짜 조직의 위기요소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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