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칼럼] 총수가 뛰게 하라


"여러분도 교회에 열심히 다니세요."

구속 중인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최근 면회하고 온 지인이 요즘 최 회장이 종교에 심취해 있더라고 했다. 지난 2ㆍ4분기 SK하이닉스가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는 소식을 전하며 하이닉스를 인수한 일이 성공적인 의사결정이었음을 상기시켜도 최 회장은 그저 "겨우 한 번 실적이 좋은 걸 같고 뭘 그러세요"라며 초탈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최 회장이 기독교인인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고 특유의 침착함 역시 새삼스럽지 않다. 하지만 지금 그가 옥중에 있지 않고 현업에서 재계 3위의 거함 SK를 이끌고 있어도 같은 모습이었을까. 속절없이 비즈니스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최 회장의 처지가 답답했다.


재계 2위 현대ㆍ기아차의 정몽구 회장은 지난달 해외법인장들에게 "밖에서 답을 찾아라"라고 말했다. "하반기에도 국내 부문은 어려움이 예상되는 만큼 해외에서 품질경쟁력과 차별화된 고객서비스로 성장세를 이어가야 한다"고 주문도 했다. 강성노조의 상습적인 파업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노조는 지난 13일 파업 찬반투표를 가결시키고 사실상 파업체제에 들어갔다. 우리나라 제조업 근로자 중 최고 대우를 받고 있는 현대차와 기아차 노조의 행태에 질린 나머지 정 회장의 마음도 서서히 해외 쪽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정녕 밖에서 답을 찾아야 하나

재계 1의 삼성그룹도 상황이 편안하지는 않다. 최근 경제민주화, 대기업 규제강화, 기업오너에 대한 사정한파 등의 정황과 맞물려 본사 이전설이 다시 고개를 들기도 했다. 사업보국(事業報國)을 경영철학으로 삼고 있는 이건희 회장이 국내여건이 조금 나빠졌다고 해외로 본사를 이전하는 결정을 내릴 리는 만무하다.

그래도 삼성이 갖가지 외풍에 시달리는 것을 보면서 그의 심정이 어떨까 싶다.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 출범 과정에서 드러난 정부의 간섭이 그 단면이다. 삼성이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1조5,000억원을 쾌척해 재단을 만들면서 여기서 나온 특허로 삼성이 공격받는 일을 예방하는 장치를 마련하려 했지만 미래창조과학부가 반대하고 나서면서 삼성이 무슨 욕심이나 내는 것처럼 일이 묘하게 꼬였다.


이렇게 좋은 일을 하려다가 뺨을 맞는 상황은 정상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사회공헌을 위해 자금을 지원하겠다는 데도 이런저런 트집을 잡는 분위기에서 어디 불안해서 대규모 투자에는 선뜻 나설 수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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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도 노조의 횡포 때문에 국내투자 확대를 주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평균연봉 9,000만원 이상을 받는 노조가 더 큰 혜택을 요구하며 해마다 파업을 벌이고 있으니 국내 설비 투자에 대한 의지가 싸늘해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는가.

이 모든 게 지금 경제상황이 너무 절박하니까 하는 얘기다. 경제성장률은 8분기 연속 0%대를 기록한 끝에 지난 2ㆍ4분기 겨우 1.1%를 기록했고 수출은 마이너스 성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다가는 2050년대 이후에는 영영 1%대 이상의 성장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암울한 전망까지 나올 정도다.

이런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기업이 투자에 적극 나서는 것뿐이다. 다행히 국내 10대그룹의 유보율이 지난해 기준으로 1,400%가 넘을 정도로 아직 기업들이 투자할 돈은 넉넉한 편이다.

대통령, 오너와 독대 나섰으면

돈이 있어도 기업들이 투자하지 않는 이유는 현재의 불편과 미래의 불안 때문이다. 기업의 불편과 불안을 덜어주기 위해 박근혜 대통령이 삼성과 현대차ㆍSKㆍLG의 총수들을 단독으로 만나는 자리를 가져보면 어떨까. 물론 과거 정경유착의 아픈 기억 때문에 부담은 될 것이다.

그래도 독대를 통해 우리 경제를 위해 기업이 무엇을 할 수 있고 이를 위해 국가가 뒷받침할 일은 무엇인지 서로 터놓고 얘기해볼 수 있다면 유익한 일이 될 것이다. 최소한 경제추락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고만 있는 것보다는 낫다고 본다.

거듭 강조하지만 투자와 일자리를 늘리려면 대기업 의사결정의 전권을 쥐고 있는 총수가 맘껏 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hnsj@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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