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발언대] 유머가 있는 세상


얼마 전 TV로 생중계되는 정당정책 토론회를 본적이 있었다. 국고보조를 받는 정당 정책위의장 등이 출연해 소속 정당의 물가정책 등을 홍보하고 다른 정당 대표들과 토론하는 자리였다. 법에 의해 국고보조를 받는 정당이 자그마치 9개나 된다는 사실을 아는 국민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명색이 토론인데 한꺼번에 사회자를 포함한 출연자 10명이 화면을 가득 메운 모습에서 답답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더욱이 다른 당 정책에 비해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내용을 놓고 저마다 열띠게 주장하고 토론하는 모습도 시청자 입장에서는 재미를 반감시켰다. 상대방 말을 듣기보다 자신의 주장과 논리로 상대방을 압도하겠다는 토론자들의 경직된 자세는 경기장에서 투혼을 불태우는 전사의 태도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는 학생토론대회에 출전한 중ㆍ고등학생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언어가 가진 한계와 이성적일 수만은 없는 인간 본성에 비춰볼 때 탄탄한 논리가 마음의 문을 닫고 있는 상대방에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말로 상대방을 설득하고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려면 상대방 마음을 열도록 하는 것이 먼저다. 나는 상대방 마음을 여는데 가장 효과적인 것은 유머만 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냉철한 이성에 고개를 끄덕이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따뜻한 가슴이기 때문이다. 최근 학교에서 토론연습을 많이 한다고 하는데 그 과정에 상대방 마음을 열 수 있는 유머구사 훈련도 포함시켰으면 하는 이유다. 어릴 때부터 유머감각을 갖추고 다른 이들과 어울려 사는 방법을 배운다면 사회생활에 큰 도움이 될 듯하다. 우리에게는 이미 수천년에 걸쳐 고단한 삶을 해학과 풍자로 승화시켜 살아온 조상들의 DNA가 있으니 이를 현대감각에 맞게 되살리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 또한 팍팍한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남겨진 소중한 유산이라고 봐야 한다. 처음에는 어색할지 모르겠지만 어렸을 때부터 유머를 자연스럽게 접하다보면 양극단으로 치닫기만 하는 우리 사회도 조금씩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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