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2월10일] <1264> 미터법


1799년 12월10일, 프랑스가 미터법을 도입했다. ‘헷갈린다’는 반발이 없지 않았지만 소리를 못 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지 꼭 한달 된 나폴레옹의 권세가 두려워서다. 강압적인 법령발표와 달리 준비는 치밀하게 진행됐다. 과학과 문물이 급속도로 발달하던 17세기부터 십진법 체계가 필요하다는 논란을 구체화하고 실행한 주역은 귀족 출신임에도 혁명에 적극 가담한 탈레랑. 혁명 이듬해인 1790년 프랑스 과학아카데미에 십진법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도량형 개발을 의뢰하고 자금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프랑스 과학자들은 북극에서 남극까지의 거리인 지구자오선의 2,000만분의1을 길이의 단위로 삼자는 데 합의했다. 문제는 프랑스 바깥은 실측방법이 없었다는 점. 결국 각국의 자료를 모아 합산하기로 정했지만 난제를 떠맡은 천문학자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세계 각국의 단위가 무려 2만5,000여 가지에 달했으니까. 7년간의 노력 끝에 결정된 새로운 십진법 도량형은 나폴레옹이 실각한 뒤 폐지 여론이 일었지만 끝내 살아 남아 분권적인 프랑스의 정치와 경제를 한데 묶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1875년에는 17개국이 모여 국제표준으로 삼자는 미터조약도 맺었다. 미터법이 법령으로 등장한 지 209주년. 미터법은 자유ㆍ평등ㆍ박애의 정신과 함께 프랑스혁명이 인류에게 남긴 최대 유산으로 꼽힌다. 우리나라도 2007년부터 평(坪)이나 근(斤) 같은 척관 단위 대신 미터체계를 법으로 강제하고 있다. 세계화에 뒤지지 않기 위해서다. 전세계를 통틀어 미터법을 채용하지 않은 국가는 단 3개국뿐이다. 미얀마와 라이베리아ㆍ미국이다. 미터와 인치의 혼용으로 우주선이 폭발한 경험을 가졌으면서도 미국은 미터법을 외면하고 있다.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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