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김재영의 남성학] 우리역사의 3대 정력남

정문창·지철로왕·신용개 '최고 남성'

조선시대 문인이었던 손영숙이 나주 기생 자운아(紫雲兒)를 사랑했는데 자운아는 본래 도성의 기녀였으나 죄를 지어 귀양 간 처지였다. 손영숙은 유교경전에 얽매인데다 어리숙한 사내였기에 교합의 즐거움을 아는 자운아는 마지못해 수청(守廳)을 들었다. 이후 손영숙이 도성으로 돌아가고 조치규(趙稚圭)가 전주 부윤이 되어 나주에 들렀다가 자운아의 시침을 받게 되었다. 자운아와 열락을 보낸 조치규가 ‘너는 많은 사람을 겪었는데, 나는 몇 등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자운아가 ‘가장 뛰어난 것은 상상 상중 상하이고, 다음은 이상 이중 이하이며, 그 아래는 삼상 삼중 삼하가 되고, 등수에 들지 않는 것은 차상 차중 차하가 되고 가장 졸렬한 것은 경지경(更之更)이 되는데 영감은 겨우 삼하에 드십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조치규가 ‘그렇다면 손영숙은 몇 등급이며 가장 뛰어난 남자는 누구인가’ 물었다. 그러자 ‘손영숙은 경지경이며, 오직 군수 정문창(鄭文昌)이 뛰어나서 2등인 상중에 속합니다’라고 했다. ‘해서 노희량이 ‘호남에 사신 가서 어찌 그다지도 황당한고 / 이조정랑 손비장이 사북량이 된 것을 / 삼 년 동안 풍류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니 / 이때에 정문창이 있는 줄 몰랐네’라는 시를 지었고 오랫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고 한다. 이로 인해 정력이 형편없는 사내로 낙인이 찍힌 손영숙은 고개를 들고 살 수 없을 정도로 수모를 겪었다. 몇 년 뒤 그가 쓴 책문(冊文ㆍ국가의 주요 현안에 대한 건의서)이 장원에 뽑히자 시험감독관이 축하의 글을 보냈으니 ‘그대는 이제 지난날의 경지경이 아니다’라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중국의 사마천이 남성의 심벌을 잘린 궁형(宮刑)의 고통과 콤플렉스를 역사서 편찬을 통해 극복했다면 손영숙 역시 남자로서의 미약한 성적 능력을 학문으로 극복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자운아에 의해 최고의 남성으로 평가 받은 정문창은 포은 정몽주의 후손으로 성종대에 활동했던 인물이나 저서나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다만 고려가 망하자 정몽주의 후손들이 산야로 숨어 들어 오래도록 살다가 정문창에 이르러 벼슬길에 올랐기에 대대로 손끝하나 움직이지 않고 살았던 다른 양반들과 달리 튼튼한 몸을 물려받았을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정문창은 심벌이 45㎝에 달했던 신라의 지철로왕, 하룻밤 만리장성을 쌓았던 기생 사덕이 ‘묘기가 백 보 밖에서 버들잎을 맞히는 활 솜씨를 능가하고, 웅대함이 오동나무 수레바퀴를 방불케 한다’고 평가했던 신용개와 더불어 우리 역사의 3대 정력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정문창 역시 2등에 속하는 상중에 해당하니 이는 남성이 아무리 뛰어난 절륜가라 할지라도 여성들의 성적욕구에 미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중국이나 인도 성고전들이 여성과 남성의 성적능력 차이를 8대1로 본 것도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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