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부품ㆍ소재 기업들의 ‘극일 바람’이 불고 있는 가운데 최근의 원ㆍ엔 환율 하락이 이 같은 움직임에 도리어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제조업체들이 엔화환율 하락으로 일본산 부품ㆍ소재의 수입가격이 떨어지면서 부품 국산화 노력을 소홀히 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당장의 달콤한 유혹이 독(毒)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까지 100엔당 1,000원대를 유지하던 원ㆍ엔 환율은 올들어 크게 하락, 현재는 950원대로 4년7개월 만에 최저치까지 내려앉은 상황. 엔화환율 하락세가 고착화하면서 일본산 부품ㆍ소재의 수입가격이 함께 내려가자 수입비중이 높은 제조업체들은 표정관리를 하고 있다. 특히 휴대폰과 액정표시장치(LCD) 등 핵심부품을 일본에 의존하고 있는 곳들은 원가절감으로 마진율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산업계에서는 현재의 환율 하락으로 일본과 경합대상인 주력 수출제품들의 가격경쟁력이 오히려 떨어질 수 있고 환율 하락세가 고착화할 경우 부품 국산화 노력만 저하시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삼성경제연구소는 28일 내놓은 ‘엔화에 대한 원화강세와 산업별 영향’ 보고서에서 원화환율과 엔화환율이 상반된 방향으로 움직이는 ‘탈동조화(디커플링)’가 장기화하면 우리 주력 수출산업에 악영향을 미쳐 경기회복을 저해할 것으로 우려했다. 연구소는 원화의 엔화 대비 환율이 1%만 강세를 보여도 자동차ㆍ전자 등의 수출을 0.6~0.9%나 떨어뜨릴 수 있다고 밝혔다. 김정우 수석연구원은 “우리나라는 통신장비ㆍ전자기계부품ㆍ컴퓨터 등 30여 품목의 수출에서 일본과 경합을 벌이고 있는데 최근 원ㆍ엔 환율 하락으로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소는 원ㆍ엔 환율이 1% 절상되면 화학의 수출액은 0.983% 감소,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자동차 등 운수장비의 수출액도 0.914% 줄어들 것으로 파악했다. 특히 전기ㆍ전자와 운수장비의 매출액 대비 수출비중은 지난해 상반기 기준으로 각각 79.4%와 66.0%에 달해 원ㆍ엔 환율 하락으로 더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우려됐다. 김 연구원은 “정부가 글로벌 관점에서 수출기업 경쟁력 강화방안을 마련하고 고부가가치화 등을 통해 기업의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