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글로벌리즘의 명암] 개방10년 남미경제

 - (1) '경제회복' 뒤안길엔 실업자 '신음' -환란을 겪으면서 한국 경제도 글로벌 경제의 흐름에 휩쓸리게 됐다. 브라질·아르헨티나 등 남미 국가들은 10년전에 금융위기를 겪고 자본시장을 개방, 글로벌 경제를 받아들임으로써 위기를 극복했다. 하지만 방대한 실업자 양산, 빈부 격차 심화, 경제의 종속화 등의 부작용을 낳고 있다. 우리보다 앞서 외환위기를 겪고 시장경제를 수용한 남미 경제의 현주소를 짚어봄으로써 글로벌리즘을 앞세운 신자유주의 경제의 장점과 폐해를 시리즈로 진단해본다. 【편집자주】 리우데자네이루의 코파카바나 해변. 비키니 차림의 늘씬한 여인들이 해변을 따라 조깅을 즐기던 수백여M의 백사장 대로가 어둑어둑해지면서 노점상들로 가득찼다. 조악하게 가공한 보석류, 가난한 화가의 그림, 싼 옷가지들이 전등불 하나에 의지해 진열됐다. 야시장의 노점상들은 오후 7시면 하나, 둘씩 나타나 자정까지 인근의 부유층, 관광객을 기다린다. 뉴욕에 살다가 귀국해 이곳에서 보석 진열대를 차려놓은 70대의 노인은 『여기에 있는 노점상들은 사실상 실업자』라며 『월가는 수익만 내길 바라지 실업율 따위는 조금도 신경쓰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세계 금융센터인 뉴욕 월가와 리우데자네이루의 실업인구 사이에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가. 미국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는 노인은 『미국 은행들이 브라질에 빌려준 빚을 받아내기 위해 실업을 강요하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 지난 1월 레알화 절하와 함께 파국으로 치닫던 브라질 경제는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다. 한때 40%를 웃돌던 단기금리는 20%대로 떨어졌고, 빠져나가기만 하던 외국인 투자자들이 다시 브라질을 찾고 있다. 지난 1·4분기엔 지난해 하반기의 마이너스 성장을 극복, 플러스 1.0%의 성장율을 달성했다. 거시지표로만 볼때 브라질 경제는 분명한 회복세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실업률에 있어서는 회복을 장담할 수 없다. 브라질 제2의 은행인 이타우 은행의 자료에 따르면 연초 6%대였던 전국 실업율은 상반기에 8%를 넘어섰고, 연말에는 9%를 넘어설 전망이다. 상업중심지인 상파울루의 실업률은 연초 17%에서 5월말 현재 20%를 넘어섰다. 브라질은 제3세계·개발도상국·이머징마켓등으로 불리는 비(非)선진국 그룹의 대표적인 나라다. 지난 87년 치욕적인 모라토리엄(국가 파산)을 선언했던 쓰라린 경험을 통해 브라질은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리즘(GLOBALISM)에 편입됐다. 그 결과는 리우와 상파울루의 고층빌딩, 그리고 대대적인 달러 유입이었다. 그러나 세계 경제의 한쪽 귀퉁이가 무너져도 동시에 흔들리는 불안한 구조를 노출했고, 국내 빈부격차가 커지는 문제를 야기했다. 아마존의 나라가 글로벌리즘을 받아들이는데 공헌을 한 사람은 한때 좌익이론가였던 페르디난도 카르도수 대통령이다. 그는 대학교수 시절에 제3세계 이론을 정립, 군사독재정부에 대항하다 미국·프랑스·칠레등을 전전하기도 했다. 대사면령으로 귀국한 카르도수는 철학을 바꿔 우익정당의 상원의원이 됐고, 92년 마침내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대통령 취임후 브라질의 알짜배기 공기업을 해외에 매각하고, 외국인 투자자들을 유치하기 위해 정치및 경제 개혁을 단행했다. 무엇이 종속이론의 대부로 하여금 제국주의 논리를 받아들이도록 했을까. 그것은 과거의 유산이었다. 카르도수가 취임한 93년, 브라질은 연간 2,000%에 달하는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에 시달렸다. 전임대통령들은 모라토리엄을 감수하면서 미국 자본에 저항했지만, 얻은 것은 가난과 살인적인 물가였다. 무엇보다 인민들에게 빵을 주는 것이 시급할 때였다. 카르도수는 선거운동과정에서 빈부격차 해소를 주장하며 농민과 근로계층의 지지로 당선됐지만, 당선후에는 보수세력과 손잡고 선진국 자본에 대한 시장개방을 단행했다. 자유주의자로 돌아선 카르도수는 자국 통화(레알)를 달러에 고정시킴으로써 수입물자 가격을 떨어뜨려 물가를 잡고, 외국자본을 적극 유치, 국가 파산을 막았지만, 빈민층을 양산했다. 브라질 경제연구단체인 IBGE의 조사에 따르면 상위 부유층 20%가 국가 전체 부(富)의 60%를 가지고 있는데 비해, 하위 20%는 2% 밖에 소유치 못하고 있다. 유엔 조사에 의하면 하루에 1 달러 이하로 살아가는 빈민층이 국민의 4분의 1에 이른다. 한편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마치 미국 캘리포니아에 온 느낌이다. 달러를 현지통화(페소)로 환전을 할 필요도 없다. 공항 택시도 달러를 받고, 식당·점포에서도 미국 지폐가 그대로 통용된다. 헌법으로 「1달러=1페소」에 묶여 있고, 차제에 달러를 그대로 쓰자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아르헨티나도 80년대말에 글로벌리즘을 받아들였다. 89년 집권한 카를로스 메넴 대통령이 취임했을 때 경제는 완전히 붕괴해 있었다. 세기초 10대 강국이었던 나라가 70위권으로 밀려나 있었고, 인플레이션은 2,000%에 이르렀다. 메넴은 미국물을 먹은 학자 도밍고 카발로를 재무장관으로 앉혀 경제개혁을 단행했다. 카발로는 그의 표현대로 「마취도 않고 수술」을 단행했다. 메넴이 카발로를 입각시키면서 손을 댄 일은 노동자 지향의 페론주의의 청산이었다. 명분상으로는 페론주의를 건드리지 않았지만, 페론주의가 지향한 보호주의와 사회주의 정책을 포기하고, 글로벌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시장원리와 개방원칙을 받아들였다. 메넴 정부는 자발적으로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 지원을 요청했고, IMF 요청에 따라 페론주의의 독소를 제거했다. 국영기업을 해외에 매각하고, 기업주로 하여금 근로자를 마음대로 해고하도록 허용했다. 그들은 선배들이 외쳤던 「양키 고홈」 대신에 「양키 컴온」을 부르짖었다. 글로벌 이론으로 무장, 새롭게 탄생한 페론주의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페론주의는 경제적 독립이다. 그런데 전화가 불통인데 어떻게 독립을 주장하란 말인가.』 『예전엔 양키 자본이 침략해 들어온다고 걱정을 했다. 그런데 보호주의의 결과가 무엇인가. 이미 세계는 미국화(AMERICANIZE)되고 있지않는가. 우리만 반대방향으로 갈수 없지 않는가. 이를 빨리 수용하는 길밖에 없다.』 교조적인 페론주의가 퇴색하자, 아르헨티나엔 월가의 금융황제로 알려진 조지 소로스가 찾아왔다. 그는 25%의 지분을 가진 「이르사」라는 기업을 설립, 오피스 빌딩·쇼핑몰·고급호텔·음식체인점을 사들였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가장 큰 갈레리아 피시피코 백화점도 소로스의 소유다. 한때 남미 국가들의 경제정책을 결정했던 고위층들은 좌익에 함몰됐거나 미국에서 경제를 공부한 이른바 「시카고 보이」들이다. 그들은 신자유이론(NEO-LIBERALISM)으로 무장, 글로벌리즘을 받아들임으로써 경제를 살리는데 일단 성공했다. 그러나 그들은 선진국 자본에 의해 제3세계 인민들이 가난에 빠지고, 경제 주권이 빼앗기게 된다는 종속이론의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리우데자네이루=김인영 특파원 INKIM@SED.CO.KR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