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 에어버스의 위기

얼마 전 TV에서 에어버스의 초대형 여객기 A380의 제작과정을 소개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감탄한 적이 있다. 집채만한 항공기 부품이 독일과 영국ㆍ스페인 등 유럽 전역에서 날아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프랑스에서 조립되는 모습은 실로 경외감을 불러일으켰다. 10만여개의 배선 길이만 해도 500㎞를 넘는다고 하니 그 정교함이란 현대기술의 총아로 칭송될 만했다. 특히 유럽 4개국이 한마음으로 뭉쳐 만든 합작품이라는 사실도 우리로서는 부럽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요즘 외신이 전하는 소식을 보면 현실세계는 TV와 좀 다른 듯하다. 에어버스가 잦은 기술적 결함에 따른 인도 지연으로 추락위기에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에어버스 경영진이 뒤늦게 1만명 감원, 공장 매각 등 나름의 구조조정 계획을 내놓고 있지만 기대효과는 별로 신통치 않은 듯하다. 에어버스의 경영위기는 국내 기업들에도 여러 가지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가 경영진의 위기불감증에서 빚어진 ‘예고된 재앙’이라는 점이다. 각국 정부의 입김에 좌우되는 경영진은 자리 보전에만 급급할 뿐 현장에서의 문제 제기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고질병을 안고 있었다. 회사 경영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된 다음에야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만 급급한 추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만약 에어버스가 단일 대주주의 경영구조였다면 이 지경까지 가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때문에 정치적 외풍을 막고 신속한 의사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통합된 경영구조가 갖춰지지 않는 한 새로운 비상을 기대하기 어려울 듯하다. 에어버스가 유럽 4개국의 합작기업이다 보니 노조와의 관계도 복잡하기 그지없다. 에어버스 경영진은 이번 구조조정안을 설명하기 위해 마련된 협상테이블에서 4개국, 25개 노조 대표단과 얼굴을 마주보게 된다. 한때 복수노조가 설립된다고 비상이 걸렸던 우리 사정을 보면 에어버스 측이 그동안 겪었을 고통은 그리 상상하기 어렵지 않을 듯하다. 노조는 벌써부터 감원방침에 반발해 시한부 파업을 벌이는 등 강경대응을 선언하고 나섰다. 전문가들은 에어버스 경영진이 각국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과감한 감원을 단행해야 한다고 충고하지만 유럽의 노동문화를 감안할 때 이마저 쉽지 않아 보인다. 에어버스는 사실 미국에 맞서 유럽 국가들이 내세운 자존심의 결정체다. 출범취지를 보면 더 이상 좋을 수 없었지만 시장경제의 현실은 그리 만만치 않은 듯하다. 유럽 국가는 지금 에어버스를 통해 톡톡한 수업료를 치르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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