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ㆍ독일ㆍ영국 등 유럽 경제대국의 정상들이 대공황 이후 최악으로 평가되는 전세계적인 경기침체를 계기로 금융시장에 대한 감시와 개입을 강조하는 ‘신자본주의(New-capitalism)’를 역설했다.
2차대전 이후 세계 자본주의를 이끌어온 한 축인 국제통화기금(IMF)도 65년 만에 처음으로 ‘사회 안전망’ 강화를 강조, 기존 정책에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오는 4월 영국 런던에서 두번째로 열리는 G20(주요 20개국) 금융정상회의에서는 미국 중심의 브레턴우즈 체제를 대신할 신브레턴우즈 체제의 창설 주장에 힘이 실릴 것으로 예상된다.
외신에 따르면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8일(현지시간) 파리에서 ‘자본주의의 미래’라는 주제로 열린 경제회담에서 새로운 금융질서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런던 G20 정상회의에 앞서 사르코지 대통령의 제안으로 열린 이날 회담에서 메르켈 총리는 “IMF가 자본주의를 규제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면서 유엔에 각 정부의 정책을 평가할 수 있는, 안전보장이사회와 유사한 경제기구의 창설을 제안했다.
메르켈 총리는 “미국의 재정적자와 중국의 경상수지 흑자가 세계의 경제를 혼란하게 하는 주된 요인”이라고 지적하고 “우리가 금융시장만 쳐다보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메르켈 총리는 현재의 금융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경기 활성화 대책으로 각국 정부가 막대한 부채를 늘려가고 있는 데 안타까움을 표하면서 “현 시점에서는 다른 방안이 없다”며 재정방출 정책을 인정했다.
사르코지 대통령도 “투기에 기반을 둔 금융 자본주의는 자본주의 논리를 왜곡하는 부도덕한 시스템”이라고 비난하면서 신자본주의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금융 자본주의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심화하고 노동과 생산력 및 기업가 정신을 퇴색시키는 시스템”이라면서 “더 이상 이런 체제를 용인해서는 안 되며 이를 위해 21세기 자본주의에는 정부가 나설 여지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런던 G20 회의에서는 국제 지도자들이 모여 (금융시스템을 규제하는) 대책을 마련하게 될 것”이라며 “미국도 국제적인 컨센서스에 동참하라”고 촉구했다. 사르코지 대통령과 함께 이번 회의를 이끌고 있는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도 “단기 이익을 극대화하기보다는 건전한 가치에 기반을 두는 새로운 금융질서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세계경제 지도자들의 이 같은 움직임은 현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 요구가 본격화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풀이했다. 또 20일 출범을 앞두고 있는 버락 오바마 정부에 미리 견제구를 던져 협상에 적극 임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지난해 11월 워싱턴에서 열린 1차 G20 회의에서는 유럽 지도자들이 현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개혁이 시급하다고 강조한 반면 미국은 시장 규제가 가져올 부작용을 우려하면서 소극적인 자세를 취했다.
한편 IMF는 최근 금융위기에 처한 국가들에 구제금융을 제공하면서 빈민층 구호대책 등 사회 안전망에 대한 요구를 한층 강화해 정책기조의 변화를 예고했다. IMF는 지난해 11월 파키스탄에 1차로 76억달러의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빈민층에 대한 현금 쿠폰 및 전기료 보조금 대폭 확대를 요구한 데 이어 최근 벨로루시와 우크라이나 및 헝가리에도 빈곤대책 강화를 촉구했다. 파키스탄은 당초 빈곤퇴치에 국내총생산(GDP)의 0.3%만 지출하면 됐으나 IMF의 요구로 앞으로 0.9%를 지출해야 한다. 165억달러를 지원받는 우크라이나 역시 빈곤층 고용확대와 소득증대 방안에 관심을 더욱 높여야 한다.
전문가들은 IMF가 10년 전 아르헨티나 등의 외환위기 때만 해도 구제금융의 초점을 금융시장 회복과 다국적기업 지원 쪽에 맞췄음을 상기시키면서 이처럼 사회 안전망 강화를 강조하고 나선 것은 지난 1944년 창설 이후 사실상 처음이라고 밝혔다. 워싱턴 소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경제학자 사이먼 존슨은 “취임한 지 1년이 지난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총재가 IMF의 과거 잘못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 확실하다”면서 “세계화 등의 추진과정에서 IMF가 더이상 가진 자만을 위한 조직이라는 비난을 받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 분명하다”고 해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