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물가 관치로 잡히나] <1> 정부 가격통제에 멍드는 기업

과장·왜곡된 "폭리" 주장 난무… 마녀사냥식 기업때리기 확산<br>정유사 영업이익률 1~2%대… 통신요금도 세계 최저 수준<br>일방적 인하요구 설득력 잃어… "물가상승 주범 모는건 잘못"



지난 9일 정유사들의 이익단체인 석유협회는 돌연 예정된 보도자료를 취소했다. 이날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우리나라 기름값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세전 휘발유 가격보다 비싸다고 지적한 데 대해 사실과 다르다는 내용을 발표하려다 그만둔 것이다. 대신 석유협회는 OECD와 한국 기름값을 묻는 개별 질문에만 조심스럽게 답하며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대통령에 이어 재정부 장관까지 나선 마당에 숨소리조차 내기 부담스러워서다. 1월13일 이명박 대통령의 "기름값이 묘하다"는 발언 이후 기업을 겨냥한 정부 부처의 가격통제 '융단폭격'이 날이 갈수록 강도를 더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사실과 다른 과장ㆍ왜곡 주장이 난무하면서 정부의 가격통제ㆍ원가공개 부당성은 차치하고 도를 넘은'마녀사냥'식 기업 때리기로 변모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요즘 정부의 행태를 보면 마치 기업들이 물가상승의 주범인 것 같다"며 "사실과 다르게 기업을 나쁜 놈으로 몰아가면 기업활동은 위축되고 경제에 나쁜 영향이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왜곡ㆍ과장 주장 넘쳐=유가급등으로 휘발유 등 석유제품 가격이 뛰면서 이를 생산하는 정유업계가 죄인 아닌 죄인 취급을 받고 있다. 지식경제부ㆍ재정부 장관들이 해외보다 비싸다며 원가계산을 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공정위원회는 13일부터 정유사에 대한 현장조사를 벌이고 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근거 없는 주장들이 정부 부처 수장들의 입을 통해 여과 없이 확산되고 있는 점이다. 비근한 예로 OECD 평균 세전 휘발유 값이 국내 가격보다 비싸다는 윤 장관의 발언은 비교대상이 틀린 통계로 확인됐다. 윤 장관이 제시한 수치는 OECD의 옥탄가 95 휘발유와 옥탄가 100 이상인 우리나라 고급휘발유 가격을 그대로 나열한 것이다. 하지만 국내 휘발유 소비량의 99%를 차지하는 옥탄가 94 미만의 범용 휘발유 가격은 OECD 평균의 95~96 수준으로 더 싸다. 정부의 '비싼 기름값은 오로지 정유사 탓'이라는 주장도 석유제품 원가구조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쉽게 동의하기 힘들다. 국내 휘발유 소비자가는 크게 유류세 등 세금과 정유사 세전공급가(공장도가격), 그리고 주유소 등의 유통마진으로 구성돼 있다. 지난해 말 기준 휘발유가격구성을 보면 유류세가 50%(900.1원), 정유사 공급가가 44%(796.1), 그리고 주유소 유통비용이 6%(108.1원)로 휘발유 값의 절반이 세금이다. 기름값 논란이 생길 때마다 정부의 유류세 인하 목소리가 거세지는 이유다. 특히 정유사들의 영업이익률은 불과 1~2%에 그치고 있어 폭리 주장은 설득력이 잃은 지 오래다. 정유업계의 지난해 1~3분기 정유 부문 매출액은 63조3,852억원, 영업이익은 9,614억으로 영업이익률은 1.51% 에 불과하다. 4ㆍ4분기 실적이 호전돼 지난해 전체 이익률은 이보다 높아졌지만 2009년에는 4개 정유사 모두 정유 부문에서 영업적자를 기록한 점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사정이 이런 데도 정부가 정유사의 생산자가격을 계속 문제 삼고 있다. 정유사가 분식회계를 해 이익을 감추고 있다는 물증을 확보했다면 정부는 이를 공개하고 시정할 일이다. 그러나 근거가 없다면 '프로파겐다(선전)'효과를 겨냥한 포퓰리즘일 뿐이다. ◇친서민 효과 위해 기업 때리기=정치논리인 '친서민'을 과시하기 위해 기업을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정부의 속내는 통신업종에 대한 가격통제 움직임에서도 확인된다. 정부는 11일 물가안정대책회의를 열어 이동통신요금 인하를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기로 했다. 이날 임종룡 재정부 1차관은 "통화료가 인하됐다고 하지만 스마트폰 등 신규 서비스에 대해서는 더 높은 요금이 적용돼 국민의 체감도는 역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통신업계에서는 정보화 시대의 변화를 감안하지 않은 단순 비교라고 반박하고 있다. KT경제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유무선음성 등 전통적인 통신영역의 요금은 지속적으로 인하돼 유선전화와 초고속인터넷 요금은 이미 세계 최저 수준이다. 이동전화 요금도 2007년 분당 172.2원에서 2009년 147.3원으로 14.7% 감소했다. 이와는 달리 스마트폰의 경우 데이터 사용과 콘텐츠 결제가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최근 인포머텔레콤앤드미디어에 따르면 우리나라 스마트폰 이용자 1인당 월 평균 데이터 사용량은 271MB로 세계 1위다. 세계 평균인 85MB보다 세 배가 높다. 과거 음성 위주의 통신 사용이 검색ㆍSNSㆍ게임ㆍ방송 등으로 무게중심이 변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따른 비용 증가를 자연스러운 추세로 봐야지 통신사들의 폭리 탓으로 모는 것은 적정한 이윤 확보로 차세대 망 투자를 해 통신 선진화로 나아가려는 노력을 막는 시대착오적 오류다. 가구당 자가용 보급률이 0.81대에서 0.96대로 증가하면서 교통비가 27.5% 늘어난 것과 같은 이치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스마트폰 월 평균 요금은 5만4,500원으로 3만2,000원인 일반단말 사용자보다 68% 많은 반면 음성통화량은 72%가 많고 데이터 사용량은 무려 41배가 높다"며 "각종 유료 콘텐츠를 이동전화와 인터넷 서비스로 결제함에 따라 통신비에 엔터테인먼트 이용 비용이 포함돼 있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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