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심층 진단] 투자 대신 금고속으로… 일부 기업 한해에만 수조원 늘려

경기회복 지연 현ㄱ므 챙기는 상장사<br>본지, 상장사 37곳 작년 재무제표 분석<br>삼성전자 14조 넘어 최고, 포스코도 1조 이상 늘어 60%가 현금보유액 증가<br>올 회사채 만기 사상최대, 현금선호 유혹 더 커질듯



올해도 글로벌 경기가 쉽사리 회복되기 힘들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면서 상장사들의 현금 보유액이 큰 폭으로 뛰었다. 특히 일부 기업의 경우 보유현금을 수조원씩 늘리는 등 현금 챙기기에 속도를 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올해 상반기까지 실적 악화가 계속될 것으로 보이는데다 대규모 회사채 만기까지 몰려 있어 당분간 기업들의 현금 선호도는 커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11일 서울경제신문이 시가총액 상위 100개 기업 중 감사보고서를 제출한 37개 12월 결산법인의 재무제표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이들 상장사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 규모는 52조2,732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 2010년(46조1,252억원)과 비교해 13.3% 늘어난 것이다.


현금 보유액이 증가한 기업은 22곳으로 전체의 59.4%에 달한 반면 감소한 곳은 14곳에 그쳤다.

기업별로는 지난해 4ㆍ4분기 사상 최고의 실적을 달성했던 삼성전자가 지난해 14조6,918억원의 현금을 확보했다. 삼성전자의 현금 보유액이 14조원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1년 전(9조7,914억원)에 비해 무려 50%나 늘어난 것으로 지난해 3ㆍ4분기 현금 보유 규모가 11조484억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석 달 만에 무려 3조6,000억원 이상 증가한 것이다.

지난해 실적부진에 시달렸던 포스코(4조5,987억원)도 보유현금을 1조원 넘게 추가로 확보했고 대한항공과 LG전자도 각각 6,000억원, 4,000억원 이상 늘어났다. 이에 따라 전년에 비해 1,000억원 이상 보유현금이 증가한 기업은 전체 대상 기업의 3분의1을 넘는 13곳에 달했다.


이외에 제일모직이 2010년 334억원에서 지난해 964억원으로 188%나 늘려 가장 큰 증가폭을 기록했고 만도(3,357억원)와 LG생활건강(918억원)도 1년 전보다 두 배 이상 현금 보유 규모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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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2010년 851억원의 현금을 보유했던 현대백화점은 지난해 10분의1에 불과한 89억원으로 줄여 가장 큰 감소폭을 보였다.

이처럼 상장사들의 현금 보유액이 증가한 것은 지난해 유럽 재정위기 여파로 올해 글로벌 경기 부진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투자를 줄이고 대신 현금을 늘렸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그렇지 않아도 올해 상반기 업황 부진이 예상되는데 투자까지 늘릴 경우 실적부진의 부담을 떨치기 힘들 것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9일 금융정보제공업체 에프앤가이드가 추정치가 1곳 이상 존재하는 110개 상장사의 실적 전망치를 조사한 결과 110개 상장사의 올 1ㆍ4분기 영업이익은 23조8,952억원에 그칠 것으로 예상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이 상장사들의 영업이익(23조8,592억원)과 비교할 때 2조원가량 줄어든 것이다. 순이익도 전년 같은 기간보다 9% 이상 떨어진 17조원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투자는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의 신규투자 규모는 22조원에 달했지만 유럽 재정위기가 본격화됐던 하반기에는 5조원으로 급감했다. 비록 삼성ㆍLG 등 대기업들이 올해 사상 최대 규모의 투자를 하겠다고 밝히기는 했지만 경기불안이 지속될 경우 변화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글로벌 경기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상장사들이 지출을 최대한 줄이려는 모습이 역력하다"며 "일부 기업의 경우 이전에 마련된 투자계획을 다시 짜거나 보유하고 있는 다른 기업의 주식을 내다파는 것 등은 현금을 최대한 아끼려는 움직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올해 만기 도래하는 회사채 규모가 사상 최고에 달한다는 점도 상장사들의 현금 욕구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올해 만기 도래하는 회사채 규모가 38조원을 웃도는 수준에 이르면서 기업들이 상환을 위해 현금을 챙겨둘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특히 시중금리가 최근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점을 이용해 지난해와 올 초 상당수 기업들이 회사채 발행을 급격히 늘린 것도 현금 보유량이 눈덩이처럼 커진 이유라는 설명이다.

증권사의 채권딜러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지금까지 시중에 나온 기업들의 회사채는 대부분 만기 도래한 회사채 상환을 위해 미리 발행했던 물량들"이라며 "선발행으로 현금은 늘어나는데 투자는 줄이니 당연히 회사 보유액이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송영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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