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일자리를 만들자] 비합리적 임금체계도 한몫

근속연수따라 임금 기계적 호봉제 신규 채용 막고 기존 일자리 위협


“일자리만 보장된다면 임금이 깎이더라도 지금 직장에서 정년까지 일하고 싶습니다.”(40대 대기업 부장 A씨) “10년을 다녀도 대기업 대졸 신입사원 월급도 안 되는 중소기업에는 다니고 싶지 않습니다.”(인터넷 포털 게시판, ID hiskoon) 괜찮은 일자리에 대한 평가는 주로 일자리의 안정성과 함께 급여수준에 직결돼 있다.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임금을 받을 수 있고 장기 근무가 가능한 일자리는 대다수 근로자에게 만족감을 안겨준다. 그러나 우리의 노동 현실은 근로자들의 이런 바람과는 정반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다니더라도 정규직은 언제 직장에서 밀려날 지 모르는 자신의 처지를 불안해 하고 있다. 같은 회사에 다니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정규직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근로여건과 낮은 보수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한편 국내 일자리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중소기업 근로자들은 대기업의 임금 및 급여 수준과 비교해 뒤 처지는 자신의 근로조건을 비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의 주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로 우리 기업의 임금체계가 지니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한다. 김동배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비정규직 증가, 중고령 근로자 조기퇴출, 청년실업 등 주요 노동문제가 우리 기업의 임금체계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는 ‘기계적’ 호봉제가 노동시장 양극화를 가속화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호봉제가 기존 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과도한 대우로 신규 채용을 가로막을 뿐 아니라 기존 근로자의 일자리까지도 위협한다고 김 연구원은 설명한다. 노동연구원이 패널조사 통계를 한번 보자. 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01년의 경우 호봉제를 유지하고 있는 사업장의 신규채용률은 21.5%였던 반면 호봉제를 폐지한 기업은 36.0%로 호봉제기업보다 14.5%포인트나 더 높았다. 특히 300인 이상 대규모 사업장은 격차가 더 벌어진다. 호봉제 채택 기업의 신규 채용률은 20.2%로 호봉제 폐지 기업의 채용률 52.6%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호봉제를 채택한 사업장은 인력감축이 더 많았다. 장기근속 근로자에 대한 과도한 임금이 부담이기 때문이다. 호봉제 사업장이 97년부터 2001년까지 고용조정을 실시한 비율은 12.2%로 호봉제를 폐지한 기업의 8.8%보다 3.4%포인트나 더 높았다. 또 50세 이상 인력비중도 호봉제 기업이 7.4%, 호봉제 폐지기업이 11.4%로 각각 나타나 장기근속 근로자에게 임금을 더 많이 지급하는 호봉제가 오히려 고령노동자를 직장에서 내쫓는 결과를 초래했다. 직무의 성격과 근로자의 업무성과보다는 근속연수에 따라 좌우되는 임금체계가 괜찮은 일자리를 줄이고 근로자를 산업 현장에서 내쫓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김 연구위원은 “기계적인 호봉제 대신 선진국의 경험을 반영, 숙련보상ㆍ집단성과급 등 숙련과 지식에 기반한 임금체계와 성과배분을 결합한 ‘혁신유발형’ 임금체계의 도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법 및 세제 개정을 통해 임금 구성을 단순화되고 일과 무관하게 지급되고 있는 각종 수당을 비롯한 보상항목들을 사회화하는 작업이 시급하다. 한편 상대적 저임금에 시달리는 중소기업의 경우, 경쟁력 향상의 관건인 우수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스톡옵션, 직무발명 성과배분 등 함께 늘린 파이를 공유하는 임금정책의 도입이 요구된다. 전문가들은 저임금 노동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업종의 경우 외국인 근로자에 대해 일자리를 과감하게 개방하고 구조조정을 통해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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