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업체들이 불경기의 한파속에 세계시장을 겨냥한 일류기업으로의 변신을 본격적으로 꾀하고 있다.
내수 업체들이 해외 시장을 향해 발걸음을 뗀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고성장의 순풍을 등에 업고 이미 지난 90년대 수많은 내수업체들은 해외 시장의 문을 두드려 적잖은 성과를 올렸으나, IMF 당시 모든 산업계를 덮친 경영난의 한파 속에 글로벌화의 꿈이 한 차례 좌절됐다. 이들 업체가 좌절을 새로운 발판으로 삼아 수년 만에 또다시, 그러나 과거와는 질적으로 다른 형태로 해외시장 개척에 나선 것이다.
식품업계의 한 관계자는 “과거의 해외 진출이 수익성을 고려한 체계적 시장 진입보다 소규모 교포 시장에서 업계끼리 치고 받는 `밀어내기식` 수출 위주로 이뤄졌다면, 이제는 현지화를 통해 확실한 뿌리 내리기에 역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CJ와 풀무원 등 대형 식품업체들이 각각 중국과 미국에 연구센터를 설립, 현지 소비자 기호와 트렌드에 대한 심층 분석의 기간을 세운 것은 업계의 `현지화`의지를 대변하는 일례에 불과하다.
이 같은 현지화 노력을 바탕 삼아 내수 업종의 해외사업은 올해를 기점으로 터전을 다지기 위한 기초공사에서 본격적인 뼈대 설립 작업으로 돌입할 전망이다. 장기화된 경기 침체와 시장 포화로 수출업체와 내수업체의 체감 경기가 갈수록 양극화되는 상황에서. 지금까지 성장 가능성을 타진하며 조심스럽게 시장을 개척해 온 업체들이 올해부터는 지금까지 닦은 터전을 바탕으로 좀더 공격적으로 시장 확보 및 판로 확대에 나설 것이라고 각 업계 관계자들은 설명한다.
성장의 기회를 찾는 내수업체들에게 국내 시장에 이은 `황금 어장`은 단연 중국. `세계의 공장`이자 `깨어난 거대 시장`인 중국은 국내 시장이 포화 국면을 맞이한 상황에서, 지리적으로나 소비 성향 및 시장 잠재력으로나 이들 업체에게는 커다란 성장의 기회를 제공하는 제2의 내수 시장으로 인식되고 있다. 13억 중국 인구 가운데 상위 5%만으로도 국내 시장 규모를 크게 웃도는 중국의 잠재력은 시스템 불안과 미약한 현지 기반에도 불구, 치열한 국내 경쟁과 불황에 치여 오도가도 못 하는 국내 내수형 업계에게 불가피한 투자 동기를 유발하고 있는 것.
의류업계의 경우 저렴한 인건비와 현지 시장에서의 `한류(韓流)`열풍에 힘입어 고급 이미지를 구축하며 시장에서 위상을 확립하는 브랜드가 늘어나고 있으며, 식품업계도 유통기한의 제한이 적고 아시아인의 입맛을 공유하는 중국 등 아시아 시장이 해외 사업의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표 식품인 김치를 판매하는 종가집이 오는 4월 이후 중국에 첫 해외 공장을 가동하는 것을 비롯, 각 식품업체들이 해외로 내딛는 첫 발을 중국에서 시작해 글로벌화의 중심지로서 중국 시장 다지기에 주력하고 있다.
21세기의 주요 유통망을 각광을 받는 대형할인점이나 홈쇼핑 역시 거대한 중국 시장에서 내수 정체의 돌파구를 찾는다. 해외 진출업체의 대표격인 신세계는 중국내 할인점 이마트 점포망을 오는 2007년까지 10개, 2012년까지는 50개로 늘릴 계획. 대기업 뿐 아니라 중소 규모의 슈퍼마켓도 중국 편의점 시장에 진출키로 하는 등 업태를 막론하고 중국으로의 발걸음을 서두르고 있다.
하지만 업계의 시장 진출이 중국 일변도로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각 지역의 소비 성향과 잠재력에 따라 국내 업체들의 공략 지역은 점차 다변화되는 추세다. 올 들어 인도와 몽골에 우리 식음료 업계가 첫 발을 내딛은 것을 비롯, 상반기중에는 패션의 본고장인 프랑스 유명 백화점에 국내 속옷업체가 처음으로 매장을 오픈할 계획.
불투명한 내수 경기에 대한 우려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가 엇갈리는 가운데, 4,000만 소비자의 지갑만을 바라보던 내수 업계는 60여억 세계 소비자를 잡기 위한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신경립기자 klsin@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