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토요산책] 새봄의 희망을 심자

황원갑 <소설가·한국풍류사연구회장>

2005년 새해, 올해는 그야말로 ‘운명의 한해’가 되리라는 예감이다. 난국 속에서 맞은 새해를 시작하는 감회는 더욱 새롭다. 국난에 버금가는 위기 속에서 맞은 올해는 단순히 성장과 분배 차원의 경제문제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희망을 되찾아 전진을 계속하느냐, 아니면 그대로 좌절하고 퇴보하느냐 하는 국운(國運)의 분기점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다가오는 새봄은 매우 중대한 시점이 될 듯하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면 된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희망을 되찾는 것이다. 희망의 불씨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회적 상처의 봉합과 치유가 선행돼야만 한다. 이를 위해서 국가 지도자의 비상한 리더십이 절실함은 불문가지다. 뿐만 아니라 사회구성원 각자가 자비와 사랑의 길을 실천하는 것도 필요하다. 지난 한해 동안 우리 사회의 분열상은 너무나 심각했다. 정부와 여당이 한편이 되고 야당과 비판언론이 한편이 돼 좌니 우니, 또는 진보니 보수니 하고 극렬하게 대립하지 않았던가. 내 생각만 옳고 네 생각은 틀렸다는 극단적 이분법ㆍ흑백논리에 치우쳐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아예 잊은 채 무슨 불구대천의 원수나 되는 듯이 반목하고 비방하고 적대시하며 헛세월을 보내지 않았던가. 그래서 옛 성인들이 자비와 보시(布施)를 가르치고 용서와 사랑을 가르쳤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합과 상생(相生)은 외면하고 분열과 상쟁(相爭)으로만 치달아온 까닭은 무엇인가. 어리석은 미련 때문일 것이다. 정치 지도자들은 주변을 한 번 둘러보라. 이 깊어가는 겨울을 따스하게 보내는 사람은 몇이나 되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망을 가지고 다가오는 새봄을 기다리고 있는가. 서민 대부분은 여전히 상실감ㆍ허탈감 속에서 생존 자체가 불확실한 새봄을 기다리고 있다. 서민의 삶은 갈수록 고달프건만 경제회복을 위한 정책다운 정책을 내놓았는가. 민생은 이미 도탄에 빠졌건만 해가 바뀌도록 민생과는 아무 상관도 없고 그리 급하지도 중하지도 않은 일에 매달려 싸우고 있지 않은가. 서민들은 연초부터 실생활과 직결되는 여러 가지 요금과 물가가 오른 탓에 살기가 더욱 힘겹다고 신음과 비명을 토한다. 심지어는 속상해서 피우는 담뱃값까지 올라 더욱 속상해 한다. 이 깊어가는 겨울, 빈 들판에 삭풍이 몰아치듯 서민의 가슴마다 공허한 바람이 분다. 박탈감ㆍ상실감ㆍ허탈감이 휩쓸고 지나가는 폐허 같은 가슴속에 비수처럼 예리하고 얼음처럼 차가운 바람이 사정없이 몰아친다. 그것은 서민을 빈민으로 만들고 빈민을 원민(怨民)으로 만드는 두려운 바람이다. 원민이 호민(豪民)이 돼 저자와 산수간을 휩쓸기를 바라는가. 모두가 자신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자. 나와 내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와 내 것에 집착하고 있지는 않은가. 한 삶은 초로(草露)같이 덧없건만 나는 언제까지나 존재하리라는 망상에 사로잡히고 나와 내 것은 영원하리라는 미망(迷妄)에서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가. 다시 한번 자비와 사랑을 되새겨봐야 한다. 그것이 희망의 씨앗이다. 지금 서남아시아는 지진해일의 피해로 숱한 생령(生靈)이 생지옥 속에서 고통 받고 있는데 일부 몰지각한 부유층은 아직도 무분별한 호화ㆍ사치 행각을 일삼고 있으니 참으로 개탄스럽기 그지없다. 지금이 남보다 가진 것이 많다고 해서 마구 돌아다니며 돈 자랑이나 할 때인가. 또한 가난한 이웃은 이 험난한 난세, 생존의 거친 한바다에서 헐벗고 굶주리는데 저 혼자 잘 먹고 잘 입으며 잘살다가 극락에 가면 무엇하고 천당에 가면 무슨 소용이랴. 말 없이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성자(聖者)요, 중생의 고해(苦海)에서 보시의 미덕을 실천하는 사람이 곧 생불이며 보살이다. 그렇게 자비와 사랑을 실천하며 한세상을 보내다가 천명을 다하면 열반(涅槃)의 바다에 이르거나 하늘나라에 오르지 않겠는가. 우리는 지금 희망과 좌절의 기로에 서 있다. 올해에는 지난해보다 더 큰 시련이 다가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되찾아야 한다. 결코 희망의 끈을 놓쳐서도 안된다. 그래도 희망은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자비와 사랑, 화합과 상생의 실천이 곧 새봄의 희망을 심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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