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2,259억원, MP3 플레이어 시장점유율 국내 1위, 세계 2위…’
대기업 얘기가 아니다. 레인콤(대표 양덕준.사진)의 지난 2003년 성적표다. 레인콤은 지난 1999년 7명에 자본금 3억원으로 출발한 이후 4년 만에 세계적인 MP3플레이어 제조업체로 자리잡았다. ‘작지만 강한 알짜기업’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기업.
설립 이듬해인 2000년 12월 세계 처음으로 멀티코덱 CD플레이어를 개발한 것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6개월 만에 미국 시장점유율 1위에 올라서며 화려한 신고식을 마쳤다.
하지만 레인콤을 세계적인 메이커로 만든 것은 MP3플레이어 제품 삼총사. 2002년 9월 아이리버 ‘프리즘’을 시작으로 ‘크래프트’, ‘매스터피스’ 등 플래시메모리 타입 제품들이 수 백 만대가 팔려나가면서 애플사와 세계 1위 자리를 다투게 됐다.
레인콤의 숨은 알짜는 바로 ‘아이리버’라는 브랜드. 1990년대 소니의 ‘워크맨’이 휴대용 음악재생기기의 일반명사가 된 것처럼 2000년대는 아이리버가 그 뒤를 잇고 있다.
창사 5년 만에 처음 실시하는 신입사원 공개채용에 800여 명의 지원자가 몰린 것도 브랜드 덕분이다. 이들은 입사지원 이유로 ‘젊고 매력적인 브랜드’를 첫 손에 꼽았다. 경쟁률도 70 대 1 수준.
레인콤의 인사담당자는 “서울 시내 주요 대학 채용설명회를 다녀봤더니 몇몇 학교 취업지원실에서는 대기업보다 더 호응이 좋다며 시간을 늘려달라는 요청까지 받았다”고 귀띔했다.
젊고 매력적인 브랜드는 바로 ‘젊고 매력적인’ 사람들의 손에서 나오는 법. 임원들도 30대 중반일 정도로 젊다. 레인콤의 평균 연령은 31살. 50대 초반인 양 사장부터 노란색, 초록색 등을 넘나들며 머리염색을 해왔고 지금은 갈색.
따라서 적어도 고객보다 앞선 감각의 소유자라야 한다는 게 채용 여부를 가르는 조건이다. 실제로 면접 자리에서 자기소개를 최신가요를 재미있게 개사한 노래나 미리 준비한 동영상으로 대신하는 지원자들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렇게 넘치는 끼를 발휘한 지원자들이 합격에 한 발짝 더 다가간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아이리버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승승장구 했던 것도 같은 이유다. 네모 반듯한 것만을 MP3플레이어로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잠수함 모양의 크래프트(iFP-300) 모델이 나오면서 편견은 깨졌다. ‘MP3플레이어는 액세서리다’라는 아이디어가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냈고 덕분에 앞서 나갈 수 있었다. 지금은 아예 MP3플레이어를 가방이나 주머니 속에서 해방시킨 것이 아이리버라는 브랜드를 알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 돼버렸다.
양 사장은 “조르지오 아르마니나 스워치처럼 아이리버로 모든 게 통하는 세상을 그려 왔다”며 “아이리버 브랜드는 이제 단순한 소형 가전을 넘어서 하나의 패션이자 라이프스타일로 자리잡았다”고 자평했다.
레인콤에는 남다른 ‘원칙’ 한 가지가 있다. 원칙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회사가 직원 개개인의 끼를 지켜주기 위한 약속이기도 하다. 덕분에 출퇴근 시간이 따로 없다. 양 사장이건 평사원이건 아침 10시쯤 돼야 출근하기 시작한다.
다른 회사 같으면 한창 바쁘게 돌아가는 낮 3시, 레인콤의 심장부라 할 연구소는 절반 넘게 자리가 비어 있어 썰렁하다. 자기만의 근무시간표에 맞춰 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썰렁한 연구실에서 일하는 연구원들은 기자가 곁에 가도 모를 정도로 일에 푹 빠져 있다.
양 사장이 직접 말하는 조직은 ‘조직을 위한 조직’이 아닌 ‘구성원을 위한 조직’이다. 결재라인을 담당자 선에서 끝내는 것이 좋은 예다.
“자유를 구속할 수록 조직의 피로감만 늘고 결과도 좋지 않습니다. 회사는 직원 하나하나의 열정이라야만 커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