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초저금리시대 명암] 기업 자금조달 양극화

우량社만 저금리 살맛…나머지는 고금리 여전"2~3개 은행ㆍ투신사에서 회사채 발행을 요청하는 '러브 콜'을 받았지만 거절했습니다. 현재 자금수요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마냥 자금만 확보해놓는다고 좋은 게 아니기 때문이지요. 무엇보다 금리가 떨어져 잉여자금을 굴릴 만한 데가 없습니다."(D건설 재정팀 관계자) "저금리 효과요. 저희는 모릅니다. 신용이 우량한 기업들은 살맛 나겠지만 저희같이 투자부적격으로 낙인 찍힌 업체들은 저금리 효과가 피부에 와 닿지 않습니다. 돈이 몰리고 있다는 비과세 고수익펀드(투기등급 채권 30% 편입)에나 기대를 걸어봐야지요."(K그룹 관계자) 저금리 시대를 맞은 기업들의 체감온도는 이처럼 하늘과 땅 차이다. 사상 최저금리가 기업 자금조달에 숨통을 틀 것으로 낙관한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빈익빈 부익부'현상만 심화하고 있다. ◇자금조달 비용차이 심화 금융기관의 입장에서 상대적으로 안심하고 돈을 빌려줄 수 있는 우량기업들은 저금리 시대를 맞아 돈을 쓰라는 금융기관의 유혹(?)을 뿌리치기에 바쁠 정도. 우량기업들은 특히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이후 지속적으로 이어지던 고금리 조달 자금을 발빠르게 저금리로 전환, 금리하락으로 인한 수지개선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반면 조금이라도 이상한 풍문이 돌거나 그동안 자금경색으로 한두 번 고생했던 전력이 있는 기업들에는 저금리 시대는 먼 나라 이야기에 불과하다. 사상 초저금리라지만 이들 기업은 IMF 시대와 별 차이를 느끼기 힘든 고금리 부담을 요구받고 있다. 그나마도 자금확보가 뜻대로 되지 않아 신규투자는 고사하고 운전자금을 마련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특히 자금조달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기업은 우량과 부실 사이에 어정쩡하게 '낀' 기업들. 신용평가기관의 한 관계자는 "신용등급 투자가능 등급 중 비교적 낮은 수준(BBB- 급)에 속한 기업에서 투자부적격 등급 중 상위그룹(BB+급)에 속하는 기업들에는 금융권이 자금지원을 꺼리고 있다"며 "이들 기업은 설사 자금을 조달받는다 해도 시중금리 수준보다 터무니없이 높은 조달비용을 치러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우량기업들의 경우 연 이자율 6~7%에 자금을 조달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기업들은 10~15%의 금융비용을 감수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량기업 자금 집중 올 상반기 사상최대 실적을 올린 현대자동차. 현대차는 신용등급A로 투신 등 금융기관이 첫손에 꼽는 우량기업 중 하나다. 때문에 차환발행이 순조롭고 좋은 조건의 채권발행 요청도 줄을 잇고 있다.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가 1조6,000억원이나 되는데 상반기 중 큰 무리 없이 6,000억원을 상환 또는 차환 발행했다. 3ㆍ4분기 6,800억원, 4ㆍ4분기 2,900억원 등 하반기 만기도래분이 약 1조원이나 되지만 현대차는 느긋한 분위기다. 신용등급 BBB+인 D건설도 비슷한 경우다. 이 회사는 최근 모 투신사의 회사채 발행 제의를 정중히 사양했다. 은행 당좌대월한도, 기업어음(CP) 한도 등을 한푼도 쓰지 않아 채권발행으로 자금을 끌어 쓸 이유가 없기 때문. 이 회사는 상반기에 부채 1,600억원을 기분 좋게 조기 상환했고 12월 중 돌아오는 1,000억원 가량의 회사채 자금도 이미 마련해둔 상태다. 부채가 많은 철강업계는 이 기회에 재무구조를 건실화하겠다는 의욕에 차 있다. 현재 부채규모가 1조2,970억원에 달하는 현대하이스코는 이번 저금리 추세가 재무구조 개선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회사의 한 관계자는 "올초 신용등급 상향 조정으로 연간 150억원의 이자부담이 절감된 데 이어 최근 저금리로 추가적인 이자부담 경감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동부제강도 저금리 덕분에 이자부담이 월평균 200억원이나 줄었다. 이 회사는 외환위기 당시 발행했던 25%대의 고금리 회사채를 최근 차환 발행해 조달금리를 평균 9.8%대로 낮췄으며 앞으로 이자율이 낮은 은행 당좌차월 등 단기 차입금을 적극 활용해나갈 계획이다. 삼성전자ㆍLG전자ㆍ포철 등도 저금리를 만끽하는 대표적인 기업으로 IMF 이후 고금리로 발행했던 회사채를 낮은 금리로 차환 발행하고 있다. 수출가격 하락과 해외시장 침체로 고전하는 종합상사들에는 저금리가 원가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 구교형 삼성물산 상무는 "수출환경 악화 등 구조적인 문제를 상쇄할 정도는 아니지만 금융비용 급감으로 원가경쟁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투자부적격 기업은 그림의 떡 BB등급 이하 그룹들로서는 BBB급 기업들의 상황이 그림의 떡 그 자체이다. 정부가 비과세 고수익펀드 등을 통해 자금 선순환을 유도하고 있지만 금융기관이 몸을 사려 저금리시대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박성원 현대투신 채권운용팀장은 "저금리지만 BB 이하 등급인 기업들에는 아직 선순환 효과가 미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부채비율이 높아 신용평가 등급이 낮은 KㆍD그룹은 자금확보 자체가 쉽지 않다. 금융기관들은 앞길이 밝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선뜻 자금을 빌려주지 않는 형편이다. 어려울수록 투자하라는 격언을 실천하고 싶어도 한발 옮길 여유조차 없다. D그룹의 한 관계자는 "금융기관은 몸을 사리고 그렇다고 돈이 될 만한 것은 상당 부분 팔아 이제는 매각할 자산도 마땅치 않으므로 IMF 때보다 오히려 더 힘든 상황"이라며 "하반기 중 2,000억여원을 갚아야 하는데 걱정"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S사 자금담당자도 "은행으로부터 회사채 신속인수로 지원받는 금리가 15%, 은행 기존 대출은 12%선으로 높은 수준이지만 그나마 고마워해야 할 입장이지 신규대출은 엄두도 못 낸다"고 말했다. 손경숙 전경련 금융조세팀 과장은 "8월부터 연말까지 만기 도래하는 회사채 24조5,000억여원 가운데 10조원 내외가 상환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지속적인 선순환 정책 필요 정부의 저금리 정책이 실물경제에 효과적으로 파급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금융시장 점검과 주식ㆍ채권시장 활성화 등 개선책 마련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업으로의 자금유입과 투자촉진이라는 선순환 구조를 위해서는 ▦구조조정 지연으로 인한 금융불안을 빨리 불식시키고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신축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또 은행 등 금융기관은 가계대출 위주의 '전당포식 영업'을 자제하고 기업금융에 신경을 써야 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기업 자금담당자들은 "기업을 외면하고 아파트 담보 가계대출이나 국채투자 등 안전자산 위주로 돼 있는 은행들의 영업관행이 바뀌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용성 대한상의 회장은 "은행이 가산금리폭을 넓히는 등 탄력적인 자금대출 기준을 적용해서라도 기업에 대한 자금줄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하고 기업구조조정을 철저히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석훈기자 고광본기자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