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서방언론 비관적 시각 일축/홍콩반환 D­15

◎홍콩 주민 장밋빛 미래 설렌다/“본토 경제발전에 홍콩 적극활용”에/“내부권력투쟁땐 체제붕괴 우려”도홍콩의 중국 반환이 오늘로 15일이 남았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사회주의 국가로 편입되는 역사적 사실을 앞두고 홍콩은 불안감과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오는 7월1일 주권반환식을 앞두고 홍콩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지, 주권반환식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등을 살펴본다.<편집자주> 오는 7월1일 중국으로 반환되는 홍콩의 미래에 대해 낙관론과 비관론이 엇갈리고있다.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지는 최근 아시아 10개국 경영인 3백명중 83.2%가 홍콩의 언론자유가 후퇴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는 조사내용을 보도했다. 홍콩인들조차 오는 7월1일 반환일이후 홍콩의 민주화가 후퇴할 것이라는 비관론을 펴는 이들이 적지않다. 그러나 홍콩의 사업가이자 유명한 라디오토크쇼 고정출연자인 알버트 쳉은 『반환과정을 지켜보면서 홍콩주민들은 대체로 낙관적인 입장을 취하고있다』고 말한다. 대다수 기업인과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낙관론이 훨씬 우세하다. 낙관론의 실현가능성은 단기적으로는 90%, 장기적으로는 70%에 달할 정도다. 낙관론은 중국의 「1국2체제」, 「항인치항」(홍콩인의 홍콩통치), 「50년 불변」(50년간 자본주의체제 유지)이라는 반환원칙에 따라 중국이 홍콩을 적극 지원, 홍콩 경제는 계속 번영할 것이라는 게 주요 내용이다. 삼성경제연구소의 김원태 선임연구위원은 『중국이 본토의 경제발전을 위해서도 홍콩을 적극 활용할 것』이라며 현실론을 강조하고있다. 홍콩의 공식통치기구로 출범하는 동건화 홍콩특구정부는 안정과 화합의 분위기를 유지하는 가운데 기존의 행정시스템을 유지할 것이다. 영국총독이 떠나가고 홍콩인 행정장관으로 수뇌가 바뀌긴 했지만 제도적 변화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홍콩에 있는 레만 브러더의 아시아담당 분석가인 마이런 머쉬캐트씨는 『국제적인 금융센터로서 홍콩의 지위는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중국이라는 엄청난 배후지를 활용, 금융,무역,물류 에 대한 수요를 충당하면서 세계적인 비즈니스 센터로 각광받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중국은 대만통일전략, 국제여론의 눈총과 WTO(세계무역기구)가입 임박 등으로 홍콩의 번영을 지속시켜야할 입장이다. 중국은 숙원인 대만통일을 위해 홍콩에서 1국2체제를 성공시켜야 하는데다 홍콩경영에서 영국보다 못하다는 평가를 받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않을 수 없을 것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의 이종일 중국실장은 『중국이 WTO에 가입, 세계 경제외교장에 나서게 되면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 미국등 서방과도 합리적인 외교를 펼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럴려면 홍콩에서 서방의 비난을 자초할 문제를 일으키지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여기에다 수년후 중국 최고지도부가 50대의 실리추구형 지도자들로 세대교체될 것이란 전망도 홍콩의 미래를 한층 밝게 해주고 있다. 하지만 비관론이 현실화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현재로선 그 가능성이 10∼30%에 불과하지만 홍콩의 현상황이 점진적으로 악화되고 최악의 경우 소요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먼저 중국 내부에서 권력투쟁이 벌어질 경우다. 등소평 사망이후 예상되어온 중국권부내의 대립이 격화될 경우 홍콩에 대한 1국2체제원칙이 흔들릴 수 있다. 또 하나의 시나리오는 있던 본토출신 관리들의 부정부패로 인한 돌발사태. 반환후 수년뒤 중국 정부의 강력한 단속이 약화되어 홍콩특별구에 파견낸 중국 관리들이 부패하고 중국본토인의 홍콩통치에 대한 반발이 커져 소요와 진압을 되풀이하는 혼란상태로 빠져들게 될 경우다. 홍콩이 이처럼 혼란에 빠질 경우 중국의 급신장을 두려워하는 미국등 서방국가가 홍콩문제에 적극 개입, 대중국, 대홍콩 경제제제를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되고있다. 하지만 이같은 비관적인 전망은 홍콩반환에 부정적인 서방언론들의 시각일뿐 현실화할 가능성은 극히 적어보인다.<문주용 기자> ◎반환협상과정/등 “1국2체제” 선언 84년 서명 끌어내/신계반환협상 홍콩전체 반환으로 비화 동방의 진주 「홍콩」이 중국이라는 원적을 회복하는 것은 1백55년만의 일이다. 향항의 광동어 발음이 홍콩인 이 곳은 19세기초만해도 인구 6천명의 자그만 어촌에 불과했다. 홍콩이 1백55년간 영국의 손에서 격동의 세월을 보내게 된 것은 영국과 청나라간의 아편전쟁때문. 영국은 1840년 6월 아편전쟁을 일으켜 2년후인 1842년 8월 승리의 댓가로 홍콩섬을 영구 할양받는 남경조약을 맺게 된다. 영국은 이어 1856년 2차 아편전쟁(애로우호사건)으로 구룡반도를 할양받고 1894∼95년에 걸친 청일전쟁에서 패한 청을 상대로 다시 중국 신계지역과 부속도서 2백35개를 99년간 조차한다. 홍콩섬은 구룡반도와 함께 영구히 영국에 주권이 넘어갔다. 영구 할양됐던 홍콩섬과 구룡반도가 왜 지금 중국에게 반환되는 것인가. 오는 97년으로 조차기간이 끝나는 신계지역의 반환협상이 홍콩섬, 구룡반도, 신계지역 등으로 이뤄진 홍콩전체의 반환으로 비화됐기 때문이다. 신계지역이 공산정권으로 넘어갈 경우 홍콩의 번영과 안정에 심각한 영향을 줄 것으로 판단한 홍콩내 영국계 자본들은 영국 정부에게 신계 조차연장을 위한 협상을 벌이도록 채근했다. 영국은 홍콩을 반환할 의사가 전혀 없었던 것은 물론 중국과 협상을 통해 기존 청나라와 맺었던 3개조약을 유지하면서 신계는 조차기간을 연장한다는 복안이었다. 홍콩반환 협상은 초기엔 영국측이 협상을 압박했으나 나중에는 중국측이 주도권을 잡는 식이었다. 중국과 영국간의 첫 접촉은 지난 1979년 3월 이뤄졌다. 당시 홍콩 총독 머레이 매클리호즈경이 최고실력자 등소평을 만나 중국의 의중을 탐색했지만 영국의 기대와는 달리 중국은 생각이 달랐다. 중국은 마음만 먹으면 홍콩의 주권을 언제든지 회복할 수 있다고 판단, 협상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않았고 대만통일만 신경쓰고 있었던 것이다. 관심은 신계지역의 조차기간연장여부가 아니라 홍콩전체의 반환이라는 문제로 모아졌다. 탐색전이후 첫 공식협상은 지난 82년 9월 마가렛 대처 영국총리의 북경방문으로 이뤄졌다. 대처 총리는 홍콩에 대한 중국의 주권은 인정하되 행정권의 지속을 그 댓가로 받아낸다는 복안이었지만 중국의 반응은 냉담했다. 2차협상을 물꼬를 튼 것은 영국총선을 앞둔 대처 총리가 조자양 총리에게 보낸 서한이었다. 이 서한은 겉으로는 영국의 강경한 입장을 전하고 있었지만 행간에는 홍콩협상의 주도권이 중국에 있음을 시인하고 협상교착에 대한 영국의 초조함을 고백하고 있었다. 여기에 등소평은 대만통일을 위해 마련했던 「1국2체제」라는 원칙으로 화답한다. 이는 홍콩을 앞으로 50년간 고도자치에 의한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생활양식이 지속되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등소평은 왜 홍콩의 자본주의유지기간을 50년으로 했을까. 등소평은 사석에서 1국2체체의 적용기간이 너무 짧으면 의미가 없고 너무 길면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같이 결정했다고 털어놓았다. 홍콩반환협상은 드디어 84년 9월26일 가조인에 이어 같은해 12월19일 조자양 총리와 대처총리간의 서명으로 마무리된다. ◎행사일정/1일 0시 중·홍콩특별행정구기 게양/1·2일 공휴일 지정 국민축제 펼쳐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킬 홍콩 반환행사는 어떻게 진행될까. 중국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행사계획을 보면 6월30일 밤 9시에 펼쳐지는 불꽃놀이가 역사적인 행사의 시작을 알린다. 폭죽을 터뜨려 액을 물리친다는 중국 전통에 따라 이날도 빅토리아항에서는 새벽까지 불꽃놀이가 계속된다. 인근의 빅토리아 파크와 해피 밸리 경마장에는 대규모 식전 민속공연이 축제의 흥을 돋운다. 민속공연이 끝날쯤인 1일 자정직전, 본행사인 홍콩반환기념행사가 시작된다. 홍콩섬내 완차이에 세워진 홍콩 컨벤션센터 뉴그랜드홀에서 중국과 영국은 내외귀빈 4천여명과 언론이 지켜보는 가운데 합동으로 홍콩주권반환식을 거행한다. 찰스 왕세자가 영국측 대표로, 중국에서는 강택민 국가주석가 참석한다. 자정직전 1백55년 식민통치의 상징인 영국기 「유니온 잭」과 홍콩기가 내려진 뒤 자정정각에 중국 국가가 울리는 가운데 오성홍기와 홍콩특별행정구기를 게양하는 국기변경식은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다. 30∼45분간의 행사에 이어 홍콩반환을 축하하는 대연회가 같은 건물인 컨벤션센터 7층에서 베풀어진다. 음식은 외국귀빈을 위해 중국식이 아닌 3코스의 서양식으로 제공되고 동원되는 웨이터만도 6백여명에 달한다. 중국 정부는 홍콩반환 첫날과 둘째날인 1,2일을 공휴일로 지정, 반환식을 과거의 아픈 상처를 씻어내고 내부단결을 고취시키는 국민축제로 승화시킬 계획이다. 1일 새벽 중국 인민해방군이 록 마 차우 국경을 통해 홍콩으로 들어오고 이 지역 주민들은 용춤으로 이들을 환영한다. 또 상오 10시에는 구룡반도 흥 홈의 홍콩 스타디엄에서 동건화 초대 행정장관을 비롯, 특구관리들이 취임선서해 홍콩의 유일한 행정기구임을 선언한다. 이어 민속공연, 자동차 퍼레이드, 음악회, 합동 예불행사가 열리고 비둘기 1만마리를 날리는 순서가 뒤따른다. 1국2체제방안을 제시, 홍콩반환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죽기전에 홍콩땅을 밝고싶다고 했던 「20세기 위대한 정치인」 등소평은 하늘에서 이 역사적인 행사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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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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