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투기거래 불가능/자금시장 투명성 보여야/없던 규제만들기 안될말기아사태가 가닥이 잡히면서 안정을 보이는가 했던 주식시장이 외국인의 매도로 다시 동요하고 있다. 특히 지난 23일에 홍콩증시가 10.4%나 폭락하면서 동남아의 통화불안, 주가폭락 현상이 우리증시에도 그대로 나타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감이 모처럼 살아나는 국내투자가의 투자심리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단기적으로 보면 앞으로의 장세는 외국인 투자가 동향을 좌우하는 시장이 될 것 같다. 외국인의 매도물량 자체는 그리 큰 금액이라 할 수 없지만 그동안의 주가하락으로 국내투자가들이 이 물량을 소화할 만한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외국인의 매도초과 현상이 왜 진정되지 않고 있는 것일까. 여기에는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각국의 공통요인과 한국만의 요인이 같이 작용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우선 아시아 공통의 이유를 살펴보면 가장 큰 원인은 달러강세다. 강세통화인 달러자산을 사기위해 아시아뿐 아니라 유럽을 포함한 전세계의 자본이 미국에 유입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일본 주식시장에서도 외국인 투자가의 이탈이 많은데 이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아시아경제가 향후 1∼2년간은 상당한 침체를 보일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도 큰 이유중 하나다. 최근의 통화불안, 주가하락으로 직접 타격을 입은 동남아뿐 아니라 이 지역에 대한 수출비중이 높은 한국, 일본도 경기회복이 늦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한국만의 이유를 든다면 금융시장 불안요인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고 보고 있는 점이다. 기아사태가 해결의 실마리를 보이면서 우려의 상당부분이 해소됐지만 아직도 안정을 찾았다고 속단하기에는 이르다는 시각때문에 한국에 대한 투자시기는 좀 더 기다려보자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외국인들도 한국시장과 동남아 여러시장의 차이점에 대해서는 이해하고 있다. 우선 동남아 여타국가의 통화가 달러와 연동돼 왔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고평가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이것이 일시적으로 20∼30%씩 절하되면서 통화혼란, 주가급락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23일 홍콩증시의 폭락도 홍콩당국이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는 외환을 이용하여 환율을 인위적으로 방어해 왔으나 투기세력의 계속된 공격으로 더이상 버틸 수 없게 된 데서 비롯된 것이다.
한국의 원화는 95년7월부터 계속 절하되어 최고치 대비 20%이상 하락해 있다. 따라서 1달러당 1천원이상은 가지않을 것으로 보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한국의 채권시장, 외환시장이 개방돼 있지 않아 원화에 대한 실수요가 뒷받침되지 않은 투기거래는 불가능하다는 점도 동남아 다른 나라와는 사정이 다르다. 따라서 투기에 의해 환율이나 주가가 증폭되어 움직이는 측면은 이들 나라보다 훨씬 덜한 것이다.
그런데도 동남아 주식과 함께 한국주식까지 매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외국인투자가들이 대부분 아시아에 펀드형태로 투자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시아 전체 또는 아시아 어느 한 나라만의 비중을 줄이려 해도 펀드에 대한 해약으로 나타난다. 이 경우 펀드운용회사는 해약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전망이 있다고 여겨지는 주식이라도 유동성이 높은 종목이면 매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로 인한 매각물량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현 시점에서 아시아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우리의 힘으로 대처하기는 쉽지 않다. 내년 상반기께에 가서야 선진국들간의 통화협상에 의해 환율불안정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한국내부의 문제에 관련된 대응책으로는 하루빨리 금융불안을 진정시켜 외국인투자가들이 안심하도록 하는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실물경제는 바닥수준에 근접해 있기 때문에 인위적인 부양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외국인이 가장 크게 요구하는 「투명」한 시장으로만 만들어 놓을 수 있다면 외국인 매도진정효과는 매우 클 것이다. 때로는 당국이 외국인의 자본거래에 대해 규제를 하고 싶은 충동을 갖게 될 경우가 있다. 그러나 동남아 각국에서 경험했던 것처럼 규제는 더 큰 피해를 자초한다는 점을 되새겨 기왕에 규제하고 있지 않던 부분을 규제하려고 하는 발상은 절대 갖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