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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방위사업청에 한국형 전투기(KF-X) 사업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 관계자는 25일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지난 24일 오후 방사청에 KF-X 사업 관련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청와대가 KF-X 사업에 대한 조사에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우선 비밀로 다뤄졌어야 할 사안이 불거진 점이 그렇다. 특히 미국 정부의 주요 핵심기술 4건에 대한 기술 이전 거부로 KF-X 사업이 난항을 겪을 것이라는 논란이 국정감사를 계기로 불거진 마당에 민정수석실이 방위사업청을 콕 찍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중대한 결정을 앞두고 방사청이 속죄양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과연 민정수석실은 주요 기술 이전이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인지하지 못했을까. 전문가 사이에서 이 사안은 공군의 차기 전투기(FX)로 록히드마틴사의 F-35가 결정된 이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청와대 민정 쪽에서 몰랐다 할지라도 전격적인 전면 조사는 쉽게 수긍이 되지 않는다. 안보실과 외교안보수석실은 깊숙이 관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초 FX 선정에서 꼴찌인 3순위로 탈락했던 F-35가 되살아난 2013년 9월 국방부 장관으로 방위사업추진위원회를 주관한 김관진 안보실장이나 지난해 수차례 관련 회의를 이끌었던 주철기 외교안보수석이 과연 꼬여가는 KF-X 사업을 몰랐을까. 방사청 고위관계자에 따르면 올해 3월 이후 대통령에 대한 대면보고는 없었지만 청와대 각 수석실에는 수시 보고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청와대의 KF-X 사업에 대한 조사는 두 가지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다. 수석실 간 소통 부재 혹은 더 큰 결정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 그것이다. 방사청과 국방과학연구소·한국항공우주산업은 미국의 기술 이전이 안 되더라도 2015년까지 KF-X를 개발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장명진 방위사업청장은 25일 "KF-X 사업은 도약을 위한 기회"라며 "한국 과학자들의 능력을 믿어달라"고 강조했다.
앞으로 결말은 어떻게 될까. 우선 다음달 중순께 열릴 예정인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마바 미국 대통령 간 정상회담에서 큰 그림이 그려질지 기다려볼 필요가 있다. 미국이 수출 승인을 거부한 기술제한을 풀어줄지 아니면 국내 개발을 최소화하면서 보다 많은 미국산 전투기를 수입할지 방향이 잡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한 가지는 남는다. 어떤 경우든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질 수 있다. 일각에서는 방사청을 속죄양으로 삼는 구도를 예상하지만 모든 결정이 이번 정권 안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청와대도 부담을 피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분명한 사항도 하나 있다. 청와대가 공개적으로 KF-X 사업에 관심을 보인 이상 전진이든 방향 전환이든 의사결정이 빨라지고 추진력도 강해질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