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10월 27일] 국제표준화 위해 정부는 마패를, 기업은 유척을

조선시대 암행어사는 마패 이외에도 2개의 유척(鍮尺)을 가지고 다녔다. 하나는 올바른 크기로 세금을 과도하게 걷지는 않는지를 또 다른 하나는 죄인을 매질하는 형구를 규정대로 관리하고 있는지를 점검하기 위함이었다. 과거에도 도량형 표준은 중요하게 인식됐지만 근래의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폭발사고와 화성탐사선의 궤도진입 실패 등의 인치와 센티미터 등을 섞어 사용함에 따른 착오에서 생긴 사고를 계기로 조선시대의 암행어사가 다시 출두해야 하지 않을지 모르겠다. 산업발전 과정에서는 공산품을 중심으로, 이제는 와인의 맛과 향기를 동일 잣대로 비교할 수 있는 와인글라스 표준화, 장례, 골프, 택배, 콜센터 등 서비스 부문까지 표준화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최근 한 조사에서도 충전기, 1인분 음식량, 그리고 은행수수료 같은 생활밀착형 표준도 제정됐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선진국은 산업혁명 과정에서 이미 생활과 밀접한 표준들을 민간이 중심이 돼 만들어 왔으나 우리는 그동안 선진 표준을 도입하는 입장에서 정부 주도로 국가표준의 국제표준 부합에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최근 휴대폰ㆍ디지털TV 등 가전제품의 핵심기술인 동영상압축기술(MPEG)ㆍ와이브로기술 등 생활과 밀접한 원천기술을 둘러싼 표준선점경쟁이 세계시장에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경쟁에 앞서나가기 위해서는 세계시장 확보의 최전선에 있는 기업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업의 원천기술을 국제표준에 반영해 시장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은 물론 국제활동에 필요한 역량을 갖추어야 할 시점이 된 것이다. 정부는 보건ㆍ환경ㆍ안전 등 공공성이 있는 부문의 표준화 노력을 추진하고 그동안의 경험과 표준외교 네트워크를 지원하는 한편 기업은 원천기술개발과 특허, 그리고 국제표준을 전략적으로 연계시키는 방안을 본격적으로 강구해야 할 시점이다. 정부는 마패를, 기업은 유척을 들고 같이 국제표준화를 위해 노력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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