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4월 18일] 외환 시장의 '보이는 손'

10년 전인 지난 1998년 초 워싱턴을 방문한 일본 관리들은 국제 금융시장이 로버트 루빈 미국 재무장관의 손짓 하나에 의해 움직인다고 불평했다. 루빈이 엄지손가락을 들면 엔화가 상승하고 그가 엄지를 아래로 내리면 엔화는 바닥을 모른 채 떨어졌다. 그해 6월 미국은 일본과 공동으로 엔화 방어에 나서겠다고 발표한 후 국제 외환시장에 20억달러를 풀었다. 그러자 하루 사이에 엔화가 1달러당 143엔에서 136엔으로 7엔이나 폭등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150엔을 넘어 160엔을 칠 것이라는 분석이 시장을 지배했지만 미국의 개입으로 엔화는 140엔에서 진정됐다. 그동안 일본은 200억달러를 풀었어도 엔화 방어에 실패했지만 미국은 푼돈으로 외환시장을 통제했던 것이다. 일본 관리들이 이 대목에서 의아해했다. 미국이 일본이 부은 돈의 10분의1로 시장 개입에 성공한 것은 루빈 장관의 엄지손가락이 위로 치켜져 있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일본이 많은 돈을 풀어도 실패했던 것은 그의 엄지 방향이 아래로 있었다. 국제 외환시장에서는 하루에도 수조달러의 돈이 거래된다. 세계 주요도시 은행과 투자기관의 딜링룸에서 미국 재무부만 쳐다보고 투자를 결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은 자유시장원칙을 주장하면서도 보이지 않게 외환시장에 개입한다. 뉴욕연방준비은행 딜링룸에서 미국 국채(TB)를 조작하며 달러의 수위를 조절한다. 유럽중앙은행(ECB)와 일본은행도 마찬가지고 중국의 인민은행도 환율조작국의 오명을 뒤집어쓰면서도 매일 위안화 환율을 정해 고시한다. 그런 의미에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외환주권론은 이해가 간다. 어느 나라 정부나 중앙은행도 자국 통화를 그냥 내버려두지를 않는다.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여건)과 무역수지를 고려해서 적정환율이 유지되도록 시장에 의견을 제시하고 그래도 시장이 왜곡될 때는 외환창고를 열어 개입하는 것은 정부의 당연한 의무다. 중요한 것은 정부가 외환시장을 컨트롤할 때 시장 참여자와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는 점이다. 시장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시장 참여자들과 척을 질 경우 정부가 가장 싫어하는 투기세력에 허를 내줄 수 있다. 1980년대 영국이 그랬고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때 우리가 그런 경험을 직접 겪지 않았던가. 지금 우리는 그런 오류를 다시 겪고 있지 않나 걱정된다. 강 장관은 취임하자마자 외환시장에 구두개입을 했고 투기세력에 대해 싸움을 걸었다. 강 장관은 16일에는 한 세미나에 참석해 “외환시장에 잘못된 세력이 있는데 정부가 방치하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며 “투기세력보다 더 나쁜 세력은 지식을 악용하고 선량한 시장 참가자를 오도해 돈을 버는 S기 세력”이라고 맹비난했다. 최근 강장관의 말을 들으면 시계가 10년 전으로 거꾸로 돌아간 게 아닌가 착각이 든다. 1998년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모하마드 대통령이 조지 소로스를 공격하며 한 말과 톤이 비슷하지 않는가. 정부가 시장 안정화를 위해 노력하고 적정 환율을 유도하는 것을 나무랄 수 없다. 시장은 애덤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의해 움직이고 정부는 시장이 왜곡될 때 ‘보이는 손’을 행사해야 한다. 문제는 경제수장이 목청 높여 시장 참여자들을 비난하고 중앙은행과 대립각을 세우다가는 ‘보이는 손’의 기능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 금융시장은 10년 전과 크게 달라졌다. 외환위기 이후 시장의 성숙도와 자율기능은 크게 강화됐고 그에 걸맞게 ‘보이는 손’의 역할도 보다 세련돼야 한다. 과거에는 정부가 시장 참여자들을 질타하고 곧바로 개입하면 통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우리는 외환위기를 맞지 않았던가. 경제정책 담당자들이 과거에 어떤 오류를 범했는지를 이 자리에서 따지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너무나 빨리 변하는 국내외 금융시장을 만나면서 과거의 사고를 그대로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 안타깝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