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대법원에서 '세기의 재판'이 열렸다. 통상임금 소송사건의 공개변론이다. 넓은 대법정이 방청객들로 꽉 들어찼다. 현장에 가지 않은 많은 노사 관계자들도 TV와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된 이 재판을 지켜봤다. 왜 세기의 재판인가. 이 사건 판결이 미칠 파장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언론에서 여러 차례 보도됐듯 이번 소송에서 만일 회사 측이 패소할 경우 앞으로 이어질 유사소송에서 기업들이 지불해야 할 금액은 가히 천문학적이다.
또 지금까지 사태 추이를 지켜보던 노조나 근로자 역시 최종판결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판단되는 순간 소송전에 뛰어들 것이다.
기업의 피해는 과거 임금의 소급분에 머물지 않는다. 앞으로 매월 지불해야 할 인건비의 폭등도 피할 수 없다. 기업에서는 임금을 1% 더 올리느냐 마느냐를 놓고도 노사 간 합의가 쉽지 않다. 그런데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면 임금이 16% 이상 뛰게 된다. 이는 정부의 조사결과다. 통상임금 소송결과가 기업에는 재앙, 근로자에게는 로또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수당 등 포함땐 직원 배려한 기업 타격
지난번 공개변론을 통해 법률적 쟁점은 어느 정도 드러난 듯하다. 통상임금의 법적 개념이 무엇인지, 1개월 이내에 지급한 임금만 통상임금에 포함되는지, 노사 간 합의의 효력을 인정할 것인지, 법률의 명시적 위임이 없는 시행령 규정이 유효한지 등이다. 이런 쟁점은 앞으로 법률가들이 논쟁할 몫이고 조만간 대법원에서 결론을 내릴 것이다.
다만 필자는 통상임금 논란을 지켜보며 몇 가지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우선 노조나 근로자가 제기한 통상임금 소송이 정의로운가의 문제다. 이번 소송을 제기한 근로자들은 임금이 체불된 바 없다. 임금 명목이 무엇이든 당초 노사가 합의했던 근로의 대가를 모두 받았다. 임금 전액을 지급받고도 법의 허점을 기대하며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근로자를 배려한 기업일수록 더 큰 피해를 입는다는 점도 문제다. 기업이 경영을 잘해 이윤을 남기면 근로자들에게 더 많은 몫을 나눠줄 수 있다. 상여금을 올리거나 새로운 수당을 만든다. 대기업의 정규직 근로자일수록 이런 혜택을 많이 받아 왔다. 노동계 논리로는 이것이 모두 통상임금이다. 결국 근로자를 더 많이 배려한 기업일수록 손해 보고 혜택을 많이 누려온 근로자일수록 이익을 본다. 우리 사회와 법원이 이를 용납해야 할까.
임금체계 노사간 자율합의 존중돼야
소송이 근로자들에게 도움이 될지도 의문이다. 인건비 부담이 커지면 기업은 결국 임금이나 고용을 다시 검토할 수밖에 없다. 실제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서도 대부분의 기업이 임금을 조정하거나 고용을 줄여 통상임금 문제에 대응하겠다고 답했다. 일부 근로자가 단기적으로 이득을 얻겠지만 전체 근로자가 중장기적으로 손해 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노사상생을 생각한다면 지금이라도 소송을 접고 협의에 나서는 것이 옳지 않을까.
임금은 근로관계의 핵심영역이다. 노동법의 가이드라인을 지키되 기업 사정을 가장 잘 아는 노사가 자율적으로 정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또 정부나 법원은 이를 존중해줘야 한다. 이것이 성숙한 노사관계다. 통상임금 소송사태는 자율과 타협에 익숙하지 못한 우리나라 노사관계가 낳은 비극이다. 대법원이 내릴 최종판결이 정교한 법논리에 머물지 말고 노사관계를 성숙시키는 솔로몬의 해법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