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대기업들의 3ㆍ4분기 실적이 줄줄이 악화한 데는 환율의 영향이 컸다. 수개월 전부터 꾸준히 상승한 원화 가치가 대기업 실적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친 것으로 산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4대그룹 관계자는 "원화 가치가 당분간 상승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한국 기업의 수출 경쟁력이 계속 악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내다봤다.
◇현대차 3ㆍ4분기 수출, 직전 분기 대비 17.7% 감소=24일 현대자동차의 실적 자료에 따르면 3ㆍ4분기 수출은 24만9,500대로 2ㆍ4분기 30만3,100대에 비해 5만3,600대(17.7%)나 줄었다. 8월과 9월에 걸쳐 부분파업이 발생해 공급 측면의 문제도 있었지만 환율 변화에 따른 불리함도 상당 부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올 2ㆍ4분기 평균 원ㆍ달러 환율은 1,121원90전인 데 비해 3ㆍ4분기 평균 환율은 이보다 11원30전 낮은 1,110원60전이다.
현대차 3ㆍ4분기 실적을 지난해 같은 분기와 비교해보면 판매 대수는 10.8%, 매출은 6%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1.7%밖에 늘지 않았다. 현대차 관계자는 "매출 증가율보다 영업이익 증가율이 낮은 것도 환율 영향이 크다"고 분석했다.
현대차 측은 "앞으로 환율이 계속 떨어질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수출전략 전반을 다시 가다듬어야 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수출 기업들 성장세 '브레이크'=대표적 수출 기업인 포스코의 3ㆍ4분기 실적도 시장의 기대치를 밑돌았다. 매출액은 15조1,500억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3.7% 하락했고 영업이익은 6,330억원으로 무려 40.8%나 떨어졌다. 포스코 관계자는 "수출 비중이 절반이 넘어 환율이 영업이익을 좌우한다"고 설명했다.
에쓰오일도 환율 영향으로 3ㆍ4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5.1% 하락한 252억원에 불과하다고 발표했다. 에쓰오일의 수출 비중은 60%가 넘어 원화 절상이 되면 영업이익이 줄어드는 구조다.
LG전자 HA영업본부 역시 3ㆍ4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소폭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환율 영향에 따라 지난해보다 10%나 줄어들었고 영업이익률은 지난해 3ㆍ4분기 4.3%에서 3.7%까지 떨어졌다.
유류 대금과 항공기 리스료 등 외화 지출이 많은 대한항공은 환율 하락에 따른 유리함을 누렸음에도 실적이 대폭 악화했다. 3ㆍ4분기 매출은 지난해보다 3.4% 감소한 3조1,833억원이고 영업이익은 1,601억원으로 43.2% 줄었다. 실적 악화 이유는 여객과 화물의 동시 부진이다. 세계 경기 회복이 지연되고 국내 산업계의 생산기지가 해외로 대거 이전한 것도 항공 수요 부진의 이유로 작용했다.
◇4ㆍ4분기도 환율 영향에 어려울 듯=산업계는 4ㆍ4분기와 내년도 원화강세가 지속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무역수지 흑자가 오랫동안 이어져 국내 외화 공급이 많다는 것과 금융 투자를 위한 외국인의 원화 수요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김영태 현대차 재경사업부장은 "신흥국 금융불안으로 해외 자본이 제조업 경쟁력 높은 한국으로 몰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24일은 원ㆍ달러 환율이 장중 한때 연중 최저인 1,054원50전까지 내려갔다가 외환당국의 구두개입으로 1,061원에 마감했다. 올해 1월부터 9월까지의 평균 원ㆍ달러 환율이 1,106원40전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1,139원30전보다 2.9%나 내린 것을 감안하면 1,061원도 수출 기업들이 크게 압박감을 느낄 만한 수준의 원화 강세다.
자동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 수년간의 고환율 정책이 대부분 수출 업종에 대단히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았느냐"면서 "환율 덕에 번 돈을 본원적 경쟁력 강화에 쓴 업체는 살 것이고 그렇지 않은 회사는 어려움에 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