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김장훈의 기부, 재벌총수의 폭행

돈에도 냄새와 품격이 있다는 것을 요즘 새삼 느낀다. 어떤 돈은 사람의 냄새를 물씬 풍기며 고귀함을 지니고 있어 뭇사람의 칭송을 받는다. 반면 악취가 나며 오만하고 천박할 뿐 아니라 자신과 주변을 해치는 위험한 돈도 있다. 그 차이는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갈라진다. 가수 김장훈의 기부와 김승연 한화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이 대표적 사례다. 향기나는 돈, 천박한 돈 김장훈은 보육원과 불우 청소년들에게 매달 1,500만원씩 지원하는 등 지난 9년간 모두 30억원을 기부했다. 그의 기부 스토리는 감동적이다. 그는 어린 시절 처절한 굶주림을 겪었고 자살을 생각한 적도 있었다. 돈에 한이 맺혔을 법도 한데 그는 지금 그처럼 많은 돈을 기부하면서도 셋집에 살 정도로 검소하고 자신에게 엄격하다. 또 자신은 팬들의 사랑을 대신 전달한 것일 뿐이라며 공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는 겸손함을 지니고 있다. 젊은 사람이 꼼꼼하게 가계부까지 쓴다. 그는 정말 아름다운 청년이다. 나는 그를 좋아하게 됐다. 돈을 제대로, 보람 있게 쓰는 그래서 아름다운 사람은 그뿐이 아니다. 어떤 이는 조그만 중국음식점을 하면서 자장면 한 그릇을 팔 때마다 얼마씩 떼어 이웃을 돕는다. 무명의 골프 레슨프로는 교습생을 받을 때마다 일정액을 적립해놓았다가 복지단체에 내놓는다. 아예 클럽을 만들어 월급의 일정 비율을 기부하는 직장인ㆍ학교동문회ㆍ동호회 모임들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평생 행상을 하면서 모은 전재산을 아낌없이 장학금으로 내놓는 할머니도 있다. 넉넉치 않은 살림이지만 그들에게 기부는 어느 날 한번하고 마는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생활의 한 부분이다. 아직 우리의 기부문화가 척박해도 이렇게 기부를 생활화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기에 우리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기부는 나눔의 삶, 더불어 사는 사회의 가장 확실한 실천이다. 기부자들의 돈에서는 향기가 난다. 김장훈이 오래오래 인기를 끌고, 중국집 아저씨와 행상 할머니 등도 장사가 잘 돼 돈을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 반대로 김승연 회장 사건은 돈의 오만함과 향긋치 못한 냄새를 풍긴다. 그의 아들을 폭행한 사람들은 처벌받아 마땅하다. 남달랐다는 부정(父情)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아버지가 경호원을 대거 동원해 린치(私刑)를 가하고 술값ㆍ매값을 주는 식으로 해결하려 하지는 않는다. 돈 없는 보통사람들은 물론이고 돈이 많더라도 제대로 쓸 줄 아는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김 회장은 돈을 쓰지 않아야 될 곳에 썼다. 그런 돈은 경멸의 대상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되새겨봐야 특정인의 잘못을 기업인 전체의 일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지만 김 회장 사건은 어쩔 수 없이 재벌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진 자들의 높은 도덕적 책무)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가장 아쉬운 것은 오너들의 기부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은 날로 늘어가지만 오너 개인의 기부소식은 좀체 듣기 어렵다. 조 단위 돈을 내놓은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만 변칙적 경영권 승계나 비자금 조성 등의 말썽해결 차원의 것이어서 순수한 의미의 기부라고 하기는 어렵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처럼 기부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업들이 기업명의의 기부금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것에 비춰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기업인의 기부를 강요할 일은 절대 아니다. 자칫 기업가 정신과 성취 동기를 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든 기부는 자발적인 의지로 이뤄져야 하며 그래야 의미도 있다. 자선행위는 남을 돕는 것이지만 어떤 면에서 스스로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 기업 오너들이 미국의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처럼 기부에 앞장서면 기업인 이미지 개선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돈은 벌기도 어렵지만 쓰기가 더 어렵다고 한다. 김장훈의 기부와 김 회장의 폭행사건이 ‘돈의 올바른 용도’를 일깨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