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133> 공감 없는 권력은 외롭다


요즘 어딜 가나 ‘풍문’이 대세인 것 같습니다. 위험한 전염병 메르스에 대한 이야기는 말할 것도 없고, 그것을 둘러 싼 이해관계자들의 태도에 대한 재해석도 정말 당사자들이 그렇게 행동할까 혀를 내두르게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사는 시대가 과도기라고 느끼는 경향이 있다지요. 이처럼 누가 무엇을 하는지 모르고 믿기 어려운 시대에 ‘풍문’은 우리에게 괴담의 원천이기도 하지만 좋은 의사결정의 수단이기도 합니다.


엊저녁, 기자가 자주 보던 드라마가 종영했습니다. SBS 월,화 10시라는 황금 시간대에 방영되는 연속극 ‘풍문으로 들었소’(안판석, 정성주)입니다. 작품 속 인물 구도에 대해서는 한번 설명 드린 적 있습니다만, 변호사 명문가의 가장 한정호(유준상 분)와 그 부인 최연희(유호정 분), 그리고 아들 한인상(이준 분)과 속도위반 결혼으로 맺어진 인연이지만 진실한 사랑을 주는 며느리 서봄(고아성 분)의 이야기입니다. 드라마는 정말 한국사회의 많은 일면을 압축해서 보여주었습니다. 우선 명문 재벌 집안에 10명이나 되는 메이드가 있는 것이 ‘사실인가’에 대해서 누군가 우회적으로 확인해 주기도 했죠. 게다가 한인상과 서봄이 이혼 절차에 들어가면서도 손자 하나만은 결사옹위하려고 했던 부모들의 모습을 통해 시장경제 사회지만 ‘핏줄’이 얼마나 소중하게 다뤄지는지 많은 이들에게 여실히 보여줬습니다. 돈 앞에 장사 없다는 사실도 적나라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상속 지분을 조건으로 내걸고 헤어질 것을 강요하는 부모 앞에서 흔들리는 자녀들의 모습을 묘사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더 기가 막혔던 것은, 과연 우리나라가 이토록 ‘소수’에 의해 좌지우지될 만큼 규범과 기준이 없는 나라인지 상상이 안 갈 정도로 무시무시한 고위층들의 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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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호는 자신의 해외 비자금 계좌를 감추기 위해 법무법인의 고문 백대현 전 총리(박진영 분)를 활용해 현직에 있는 송 총리를 건드립니다. 자신의 해외 법인에 투자한 부인의 친구 송재원(장호일 분)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 씌우고 ‘꼬리를’ 자르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해외 투자자들의 소송(ISD)을 막기 위해 도덕적 해이 수준이 높은 새 총리 후보를 자리에 앉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일련의 과정들을 특정 법무법인이 주도한다는 밑그림을 그린다는 게 파격적이었습니다. 드라마를 보았던 기자의 지인들 중 상당수가 우리나라의 유력 인사들이 고문을 거쳐갔다던 그 로펌을 겨냥한 게 아니냐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억울한 면이 꽤 많을 것 같습니다. 특정 변호사 사무실이 한국을 통제한다는 ‘풍문’은 민주주의의 관점에서도 어처구니가 없는 사례가 아닐 수 없습니다.

드라마는 상식을 가진 보통 사람들끼리 연대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합니다. 권선징악 구도로 갈 법도 한데, 한송의 몰락이나 한인상과 그 주변의 승리와 같은 뻔한 연속극 상의 결말을 유도하지 않습니다. 판타지보다는 그럴법한 그림을 원했기 때문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어쨌든 그렇게 도덕적 해이와 탈법으로 만든 권력도 결국 ‘외로울 수 밖에 없다’는 매우 현실적이면서 절절한 결론을 냅니다. 대중의 공감을 얻을 수 없는 힘은 무기력하다는 사실을 제시하면서 말입니다.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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