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영국병과 한국병


지난 9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이 고딕 양식 건축물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여기저기서 연방 플래시를 터뜨린다. 13세기 융성했던 대영제국의 위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첨탑은 하늘을 찌를 듯하다. 관광객들은 과거 대영제국의 위대함과 웅장함에 감탄과 탄성을 자아낸다. 하지만 겉으로 화려하게 보이는 영국은 속으로는 골병을 앓고 있다. 내년 런던 올림픽을 앞두고 시내 곳곳에서는 건물을 개ㆍ보수하는 작업이 눈에 띌 뿐, 영국 경제의 생동감과 활기를 느낄 수 없다. 국내총생산(GDP)의 11%에 해당하는 1,550억파운드의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정부가 강도 높은 긴축 정책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방만한 재정 운영에 돋보기를 들이대며 1파운드라도 줄이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고 부가가치세를 17.5%에서 다시 20.0%로 끌어올리는 등 증세에도 나서고 있다. 영국 하원은 유니언 잭의 자존심인 웨스트민스트 홀을 결혼식 행사장으로 돈을 받고 빌려주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을 정도다. 영국은 지금 '긴축과 증세'를 통해 국가를 구조조정하고 있다. 국민들은 본격적인 인고의 세월은 이제 막 시작인데도 벌써부터 피로감을 호소한다. 런던의 신금융가인 카나리 워프(Canary Wharf) 광장에서 만난 한 펀드 매니저는 "전임 노동당 정권이 복지 파티로 재정이 거덜난 게 이제 부메랑으로 돌아와 국민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복지는 한번 베풀면 다시 원점으로 돌리거나 줄이는 것이 쉽지 않다. '복지병(病)'에 걸린 영국이 아직 수술대 위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한국 정치권은 반값 등록금, 무상보육 등 포퓰리즘 정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의식한 표심 잡기에 불과하다. 복지정책을 확대하는 것이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다. 재정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원칙과 법을 준수하면서 제도를 시행해야 한다. 영국병이 한국병으로 자꾸 전염되는 것 같아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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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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