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휴가의 참뜻

장마가 그치고 나면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된다. 인간은 노동하는 호모 파베르(Homo Faber)지만 놀이를 추구하는 호모 루덴스(Homo Ludens)이기도 하다. 따라서 근로자로서는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해온 만큼 잘 놀기 위한 휴가의 의미도 크게 다가올 것이다. 휴가는 일의 긴장으로부터 해방돼 몸과 마음을 재충전할 수 있는 기회다. 사회가 선진화될수록 일을 잘 하려는 노력만큼 여가를 뜻 깊게 보내려는 노력도 점점 중요해지는 추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근로자의 휴가 패턴은 일부를 제외하고 엇비슷한 것 같다. 부화뇌동(附和雷同)하거나 고정관념에 얽매여, 고속도로를 메운 차량에 갇혀 겨우 도착한 피서지에서 수많은 인파와 고성방가, 쓰레기더미에 묻혀 정신없이 며칠을 보내고 다시 교통체증에 시달리며 도회지로 돌아오는 양상을 답습한다. 이것은 휴가가 아니다. 무엇을 배운 것도 잘 쉰 것도 아니고 오히려 피로감만 누적되는, 보상 없는 또 다른 노동일 뿐이다. 기왕지사 소중한 휴가를 받았으면 시원한 장소에서 평소 미뤄뒀던 책읽기를 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조선 세종대에는 조정업무에 시달려 학문에 전념하지 못하는 문신에게 휴가를 줘 책을 읽게 하는 사가독서(賜暇讀書)라는 게 있었다는데 독서삼매경에 빠져 보는 것도 뜻 깊은 휴가를 보내는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또는 국내외의 문화유산을 두루 살펴봄으로써 견문을 넓히거나, 가족들과 함께 친척들을 방문하여 자신의 뿌리를 재확인하거나,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고적한 곳에서 자신의 삶을 반추해 보거나,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봉사활동을 펼치는 것도 좋을 것이다. 휴가는 일을 더욱 잘하기 위해 필요하기도 하지만 휴가 자체로도 의미 있는 것이다. 휴가를 잘 보낸다는 것은 시간을 가치 있게 쓰는 현명함이며 결과적으로 자신에 대한 존중과도 상통한다. 휴가의 의미가 노는 것이든 쉬는 것이든 이제 우리 사회에서 휴가의 양상이 더 다양하게 그리고 더 창의적으로 변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겠지만 그것은 일과 여가의 양 측면에서 공히 호모 파베르와 호모 루덴스가 결합해 마침내 창의적 인간인 호모 크리에트리오(Homo Creatrio)로 진화하려는 현대인의 미래지향적 자화상이기도 하다. 오상현<손보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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