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금융회사의 무사유

조웅기 미래에셋증권 공동대표 사장


우리는 어떤 생각과 의도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가. 묵묵히 열심히 일하는 것이 미덕이라 여겨지던 때도 있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오히려 일을 게을리 하는 것보다 잘못된 방향으로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더 큰 문제가 되곤 한다. '생각 없이 열심히 일하기'가 의도치 않은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사상가인 한나 아렌트는 1960년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아이히만의 재판을 보고 '사유 없는 근면’에 따른 부작용을 지적한다. 아이히만은 600만명에 달하는 유태인 집단학살정책의 최고 책임자였다. 재판장에서 아렌트가 아이히만에게서 보려 했던 것은 극악무도한 야수와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그는 충실한 직장인이자 평범한 가장이었을 뿐이다. 그저 자신에게 부여된 유대인 학살의 임무를 가장 효과적이고, 경제적인 방식으로 수행한 것이 희대의 비극으로 이어졌다. 이른바 '무사유의 죄'다. 그는 자신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어떤 결과를 낳을지를 마땅히 생각했어야 했다. 얼마 전 인기를 끌었던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쓴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의 핵심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정의에 깃들어 있어야 할 도덕적 미덕이란 좁게는 자신의 지인들에게, 넓게는 인류 전체에게 무엇이 이로운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요즘 금융회사의 무사유 그리고 정의를 다시금 생각한다. 한국 자본시장의 미래를 책임지고 있는 금융회사의 리더로서, 자본시장의 녹을 먹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 것이 바람직한 길인지 말이다. 금융회사들이 펀드를 통한 간접투자 문화를 정착시키며 외국인에 의해 좌지우지되던 천수답장세에서 탈피한 것은 괄목할 만한 성과라 볼 수 있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이제는 금융회사들이 보다 해외투자 활성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개척해야 할 때다. 적극적으로 시장을 개척하려는 투자DNA가 부족했고, 한정된 시장 내에서 경쟁을 하다 보니 미래를 대비한 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금융도 내수가 아닌 수출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 해외로 자본을 수출하고 돈을 벌어옴으로써 금융계의 삼성전자, 현대차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결과적으로 고객의 자산을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세계는 우리의 생각보다 더 빠르게 진화해 가고 있다. 또 이로 인한 기회도 생겨나고 있다. 불과 수년 만에 스마트폰, 태블릿PC 시장의 대표주자가 된 애플, 60여 개의 명품 자회사를 거느리며 명품제국을 건설하고 있는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등 세계시장에서 감지되고 있는 지각변동은 우리를 설레게 하는 흐름이다. 앞으로 우리 금융시장 그리고 소중한 고객들의 10년, 20년을 좌우할 먹거리를 마련하기 위해선 지금부터라도 해외투자에 대한 아낌없는 노력과 열정을 기울여야 한다. 그것이 무사유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한 금융회사들의 사명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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