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1일은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지 15년이 된 시기다. 한국경제는 IMF 관리체제로 전락했고 환란극복을 위해 정부는 막대한 혈세(공적자금)를 투입했다. 1998년에만 채권발행(38조8,000억원)과 공공자금(15조7,000억원) 등 55조6,000억원을 금융 정상화와 기업회생에 쏟아 부었다. 불길이 쉽게 잡히지 않자 정부는 1999년부터 2001년까지 매년 30조원 이상의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IMF 체제에 들어간 초기 4년간 정부가 쏟아 부은 공적자금은 무려 155조3,000억원. 전체 공적자금(168조7,000억원)의 92%를 4년에 걸쳐 집행했다. 물론 효과는 있었다. 경제는 빠른 속도로 회복이 됐고 2001년 8월23일 구제금융 195억달러 전액을 상환해 IMF 관리 체제도 졸업했다.
그렇다면 투입된 공적자금의 회수 성적은 어떨까. 지난 10월 말 현재 공적자금은 104조9,000억원이 회수됐다. 회수율로는 62.2%다. 50조원 넘게 아직 회수되고 있지 않는 셈이다. 더욱이 회수 가치가 있는 정리 대상 자산이 9조원 정도임을 감안할 때 최종 회수율은 66%에 그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도 있다.
◇갈수록 더뎌지는 공적자금 회수=공적자금은 '공적자금Ⅰ(1997~2002년 집행)'과 '공적자금Ⅱ(2009년~)'로 나뉜다. 흔히 우리가 이해하는 공적자금은 '공적자금Ⅰ'인데 168조7,000억원을 지원해 104조9,000억원을 회수했다. 공적자금Ⅱ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자 이를 극복하기 위해 금융기관 등에 지원한 자금인데 6조1,915억원을 투입해 3조5,999억원을 회수(회수율 58.1%)하는 데 그쳤다.
문제는 공적자금 회수가 갈수록 더뎌지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공적자금 회수를 100%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 "예금보험공사가 투입한 공적자금의 경우 매각 지연 등의 이유로 회수가 다소 지연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또 공적자금 투입 초기보다 시간이 흐를수록 회수할 수 있는 우량 물건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실제로 공적자금이 투입된 다음해인 1999년에는 14조원을 회수했고 2000년에도 15조원의 자금을 거둬들였다. 그러다가 회수금액은 점차 줄어드는데 2002년 13조1,000억원을 회수한 뒤 매년 규모는 빠르게 줄었다. 지난해에는 1조6,500억원을 회수하면서 최저치를 기록했고 올해는 10월까지 2조2,800억원 회수에 그쳤다. 기관별로는 예금보험공사가 총 110조9,000억원을 투입하고 49조9,000억원을 회수해 가장 부진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예보의 경우 우리금융지주 민영화 등이 지연된 것이 크게 작용했고 예보가 투입한 공적자금은 캠코와 달리 운용기간이 길다는 것도 이유"라고 설명했다. 예보가 부실 금융회사에 '출연 또는 예금 대지급' 방식으로 지원한 공적자금은 발생한 부실에 대한 손실 보전 목적으로 사용됐기 때문에 상당 부분 회수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정부 "회수율, 선진국 수준보다 높다"=정부의 한 관계자는 "선진국의 경우 보통 60% 안팎의 회수율을 기록하고 있다"면서 "60%를 넘어선 것만으로 일단 평균치 이상은 회수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은 1980년대 지역 주민의 주택금융을 지원해온 '저축대부조합'이 부동산 경기 침체로 대거 부실화되자 2,269억달러의 공적자금을 투입해 61.2%(1388억달러)의 회수율을 기록했다. 일본은 회수율이 더 낮다. 1990년대 제2지방은행의 구조조정을 위해 46조8,000억엔을 지원해 52.8%(24조7,000억엔)만 거뒀다.
금융감독당국의 한 관계자도 "공적자금은 위기가 실물경제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투입된 것"이라면서 "만약 공적자금을 지원하지 않았을 때 발생했을 기회비용을 생각하면 회수된 금액보다 더 큰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회수된 자금 이외의 경제적 효과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공적자금Ⅰ에 투입된 168조원 가운데 102조원은 채권을 발행해서 조달했다. 예보ㆍ캠코 등이 발행한 채권의 원리금 상환을 정부가 보증하고 있기 때문에 공적자금이 제대로 회수되지 못하면 그 부담은 국민에게 돌아온다. 최대한 많은 규모의 공적자금을 회수해야 한다는 주장도 이런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매각 시한을 못박지 않고 시장의 흐름에 맞춰 탄력적으로 조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연구위원은 "매각 시한을 정해놓고 공적자금 회수를 극대화하겠다는 것 자체가 시장에 패를 보이고 게임하는 것과 같다"면서 "헐값 매각 등의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세밀한 시장 분석과 계획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