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26일 현대ㆍ기아차그룹 본사 기획총괄본부 등을 전격 압수 수색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검찰은 이날 브리핑에서 현대차그룹 차원의‘건축 인허가 청탁’ 등과 관련해 금융 브로커인 김재록씨가 현대 계열사인 글로비스에서 수십억원의 로비자금을 받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날 압수 수색에 현대ㆍ기아차 본사는 물론 현대차그룹의 경영권 인계작업과 관련 있는 글로비스ㆍ현대오토넷 등이 포함됐다는 점에서 검찰 수사가 단순 인허가 청탁에 국한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채동욱 대검 수사기획관도 이날 “김씨의 기존 비리 의혹(대출 알선과 부실기업 인수 로비 등)과 다른 유형일 수 있다”고 말해 새로운 유형에 대한 수사일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에 따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장남인 정의선 기아차 사장의 경영권 승계작업에 대한 수사가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아서앤더슨컨설팅 회장을 지낸 김씨는 현대차그룹 컨설팅을 맡았던 인물로 현대 내부사정에 정통했다는 점에서 이 같은 전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김씨의 로비자금 창구 역할을 한 글로비스는 정 회장 일가의 출자로 지난 2001년 설립돼 급성장한 물류회사로서 정 사장의 재산 증식과 주요 계열사 지분 취득을 위한 교두보로 활용돼왔다. 글로비스는 지난해 설립 4년여 만에 1조5,000억원의 매출에 799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차량 내비게이션 등을 만드는 현대오토넷도 정 사장 등 일가가 최대주주로 있으면서 계열사의 지원 아래 급성장했다.
지난해 증시에도 상장된 글로비스의 최대주주는 정 회장과 정 사장 등이며 일가 관계자가 총 6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오너 일가가 최대주주로 있는 글로비스가 적지않은 비자금을 조성했고 이중 수십억원이 로비자금으로 쓰인 사실이 드러난 만큼 이 과정에서 정 회장 일가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경영권 승계 수사 시나리오와 별도로 김씨가 로비를 벌인 정관계 인사들에 대한 검찰 수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채 수사기획관은 이날 김씨가 로비를 한 현대차의 사업이 정관계와도 관련이 있느냐는 질문에 “사업이라는 것은 다 정관계와 관련되는 게 아니겠냐”고 답변해 수사범위가 정관계로 확대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