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시각] 최경환 부총리의 디플레 외줄타기


'디플레이션을 막는 게 우선일까. 정교한 가계부채 대책이 먼저일까.'

둘 다 부닥친 현실이라면 디플레이션을 막는 게 우선이다. '수요위축'으로 발생하는 디플레이션은 실물경기 침체와 맞물려 심각한 '공황'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1870년대 미국의 '그레이트 디플레이션'은 물론 1930년대의 대공황, 가깝게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모두 수요위축에 따른 디플레이션이 원인이었다. 고통의 역사는 디플레이션이 인플레이션보다 위험하다는 게 확인이 됐고 이후 'D'는 '공포'의 대상으로 자리했다. 일본이 돈을 풀고 유럽이 디플레이션의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강력한 대책 마련에 나서는 이유다.


한국 경제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도 높다. 저물가 상태가 이어지고 있고 실물경기도 장기간 좋지 않다. 지난 8월 소비자물가는 1.4%로 두 달째 둔화됐고 22개월째 1%대다. 한국은행의 물가안정목표(2.5∼3.5%)를 크게 밑돈다. 내수침체 등 실물경기마저 좋지 않으니 '한국도 디플레이션의 상황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수장으로는 이례적으로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한국이 디플레이션 초기에 와 있다"고 진단한 뒤 두려움은 더욱 짙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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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한국은 디플레이션의 초입에 있는 것일까. 수긍하는 이도 있지만 '아직은 그 정도의 상황은 아니다'라는 의견이 많다. 일부 경제단체도 최 경제부총리의 진단에 고개를 갸웃할 정도다. 근거는 이렇다. 기조적인 물가흐름을 뜻하는 '근원물가(농산물·석유류 제외)'는 2%대다. 8월은 2.4%로 2012년 2월(2.5%) 이후 가장 높고 기대 인플레이션은 2.8%에 이른다. 더욱이 물가하락이 상품과 서비스 전반에 나타나는 현상도 아니다. 8월 농수산물은 4.8% 떨어졌지만 공업제품은 2.1% 올랐다. 경제성장률 전망치 역시 떨어지기는 했지만 3% 중후반이다. 물가와 경기 모두 심각한 상황은 아직 아니라는 의미다.

'D의 공포'를 전파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디플레이션은 주택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 등이 포함된 새 경제팀의 경제운용 방향이 발표된 후 본격 등장했다. 경제운용 방향이 나온 뒤 지적 가운데 하나는 '가계부채 대책이 빠졌다'는 점이었다. 선진국과는 달리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2008년 이후 매년 8%씩 급증(OECD 통계)하면서 1,000조원을 넘어섰다. S&P는 가계부채를 한국 경제의 위험요인으로 재차 꼽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경제팀은 가계부채 관련 그 어떤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 애써 무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가계부채 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D의 공포를 꺼냈다는 해석이 나오는 근거다.

경기부양을 위해 기준금리를 추가 인하하기 위한 우회적 압박이라는 분석과 함께 2~3년 뒤에 있을 주요 선거에 대한 포석이라는 시각도 있다. 총선·대선을 위해 부동산·증권 등 피부로 느껴지는 자산시장을 살리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 경제부총리는 3선의 정치인이다. 여당의 원내대표도 거쳤다. 발언의 방식도 관료 출신이면서도 기존 관료 출신 장관과도 다르다. 한편으로는 진솔하지만 '과장'된 표현도 제법 있다. 하지만 특정 목적으로 한쪽만을 고집할 때 3~4년 뒤 몰고왔던 후폭풍은 거셌다. 앞은 물론 좌와 우를 두루 살피는 조타수의 역할은 그래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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