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김승웅 휴먼칼럼] 하이힐이 ‘높은’ 이유

이멜다 마르코스를 인터뷰 한 적이 있다.고 박정희 대통령의 장례식에 조문사절로 참석한 그녀가 외무부에 들러 귀국인사를 마친 후 중앙청을 떠나 공항으로 향하려는 순간이었다. 외빈용 리무진에 오르는 그녀를 큰 소리로 불렀다. 나는 당시 외무부 출입기자로, 기사 마감차 신문사로 들어가려는 참이었다.만 20년전 일이라 무슨 얘기를 묻고 들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이 난다면 그녀의 우람한 체구였다. 기름진 얼굴에, 떡 벌어진 가슴, 어깨 부위가 유달리 넓었던 스페인식 예복이 기억 난다. 그러나 가장 인상적인 기억은 그녀의 다리였다. 4~5분간 그렇고 그런 얘기를 주고 받은뒤 그녀가 몸을 돌려 다시 차에 오르는 순간 그녀의 뒷 종아리를 본 것이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다리가 너무 메말라 있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2~3학년 수준의 빈약한 다리였다. 못 볼 것을 본듯 싶어 얼른 얼굴을 돌렸지만, 또 지금도 이상하다 여기는 일이지만, 그 순간적인 기억이 지금껏 이멜다 마르코스의 전부로 내 뇌리에 남아 있어 본인에게 미안하다. 그녀의 다리가 더욱 빈약해 보였던 것은 정면에서 느끼는 우람한 체구 탓도 있지만 그 다리를 담고 있던, 유달리 높고 우람해 보이던 하이힐 때문이기도 했다. 사진에 나타나는 그녀가 왜 항상 긴 드레스 차림인지 이해가 갔다. 그러고 보니 인터뷰 당시도 역시 긴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다리의 약점을 감추기 위해서라고 나는 이해한다. 그녀의 실각 후 대통령궁에서 1,000 켤레 이상의 초호화 구두가 발견돼 세계의 주목을 받았을 때 나는 이 세상에서 누구 보다도 그녀를 잘 이해하는 남자가운데 하나로 바뀌어 있었다. 최근 뉴욕 맨해튼 패션 박물관의 관장 발레리 스틸 여사가 펴낸 책 「구두, 그 스타일 백과」(SHOES, A LEXICON OF STYLE)는 한마디로 『여성은 왜 하이힐을 신는가?』가 그 주제다. 지난 5년간 세계에서 내로라 하는 여류 저명인사들이 신던 160 켤레의 하이 힐을 사진과 함께 집중 조명, 구두 스타일에 따라 구두 주인의 기질과 퍼스낼리티가 어떤지를 규명해 낸 「하이힐 심리학」의 총서다. 이 책을 소개한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의 서평이 맘에 든다. 서평은 『구두 얘기만 나오면 대부분의 여성들은 심리적으로 묘하게 비탈진 정서를 갖기 싶상이다』라고 서두를 시작한다. 그리고 수백만 필리핀 시민의 세금을 횡령해 하이 힐을 사들인 이멜다 마르코스를 그 비탈 정서의 대표 사례로 지목, 「우리 모두에게 잠재된 이멜다적 요소」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하이 힐에 관한한 모든 여성이 이멜다와 유사한 정서를 지닌다는 것. 그 정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정서인가. 첫째는 하이 힐을 신음으로써 여성이 가장 여성 다움을 자각하기 때문이라고 이 책은 지적하고 있다. 가슴 부위에 힘을 뻗치고 골반에 균형이 잡힌다. 또 몸을 요동치며 걸을 수 있어 자신의 섹시한 면을 과시할 수 있기 때문으로 나타나 있다. 두번째 이유는 하이 힐이 지니는 상징성 때문이다. 하이 힐을 신음으로써 우선 남보다 커 보이고 남한테 중요한 인물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자신의 신분 상승이 하이 힐이 지니는 대표적 상징성이다. 일견 그렇고 그런, 하찮은 얘기로 치부될 수도 있을지 모르나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 신발이 지니는 신분상승의 이미지는 구약시대 유대인들에게도 그대로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민족 지도자나 선지자를 불러 낼 때마다 그들의 신 「절대자」는 지금 서 있는 곳에서 무조건 신발을 벗을 것을 강요했다. 그 땅이 신성하기 때문으로 풀이되기도 하지만 보다 심오한 뜻은 자신의 신분을 제로로 돌리라는 겸손의 강요로 받아 들여 진다. 그 시대에도 신발은 역시 신분과 권위의 상징이었던것이다. 신발을 벗고 대지위에 자신의 발꿈치를 댈 줄 모르는 위인에게 신은 결코 옷자락을 드리밀지 않았던 것이다. 하이 힐 백과사전을 낸 저자의 의중 역시 종국엔 바로 이런 영성을 말하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신발이 지니는 파워 개념은 하이 힐 보다 부츠에서 더욱 완연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이 책은 기술하고 있다. 부츠를 선호하는 여인을 한마디로 권력지향적인 인물로 묘사, 그 예를 2차대전 당시 미국의 명장 패튼이 남긴 『병사들에게 부츠(군화)를 신겨라! 그 병사 모두가 용사가 되리라』는 어록까지 원용하고 있다. 이멜다의 구두 가운데 부츠는 과연 몇 켤레나 될까. 다음번 만나면 기필코 물어 볼 생각이다.<언론인·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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