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의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한다는 명분 아래 각종 국가 연구개발(R&D) 사업에 혈세가 ‘게 눈 감추듯’ 사라지고 있다. 사업 초기 타당성 검증은 고사하고 각 부처가 ‘예산 따먹기’식으로 동일사업에 경쟁적으로 뛰어들어 중복투자가 심하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또 올해 사상 최고 수준인 10조원의 재정을 R&D 분야에 투입할 예정이지만 아직까지 R&D 사업의 효과를 측정하는 표준화된 사후 검증 모델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실적 없는 R&D 사업, 부처 중복투자까지 가세=과학기술부가 최근 내놓은 ‘과학기술기본계획 2006년도 추진실적’ 자료를 확인한 결과 지난해 최소 7억원에서 최대 113억원의 예산을 쓰고도 논문이나 특허를 단 한 건도 올리지 못한 국가 R&D 사업은 모두 13건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특허 실적이 3건 이하에 불과했던 100억원 이상 R&D 사업 2건까지 고려하면 정부가 이들 사업에 쏟아 부은 재정은 총 1,115억원에 달했다. 각 부처간 R&D 중복투자도 심각한 상황이었다. 가령 정보기술(IT)과 생명기술(BT)이 결합해 실시간으로 생체정보를 파악하게 하는 ‘U(유비쿼터스)-헬스케어’ 사업의 경우 중복투자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과기부에서 U-헬스케어 제어용 핵심원천기술개발(사업비 10억5,000만원)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산업자원부는 무선 U-헬스케어 디바이스 개발(2억6,000만원)을 내세우고 있다. 뿐만 아니다. 정보통신부는 개인건강 모니터링 솔루션(9,000만원)을, 중소기업청에서는 ‘U-Hospital’ 및 U-헬스케어 시스템 개발(1억4,000만원)을 추진하고 있지만 모두 비슷한 내용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이다. 이에 대해 과기부는 “부처별로 정확한 역할범위가 설정돼 있지 않아 (중복투자에 대한) 범부처적 협의ㆍ조정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지적, 정부 스스로도 중복투자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있었다. ◇OECD 평균에도 미달하는 R&D 투자 효율성=참여정부 이후 R&D 예산은 올해 10조원에 이를 정도로 급증하고 있지만 효율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초라하다. 정부 출연 연구기관인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이 최근 발표한 ‘연구개발투자의 경제성장 기여도’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R&D 투자규모가 1% 증가할 때 ‘총요소생산성(TFP)’이 0.182%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비교 대상인 일본(0.288%), 미국(0.220%)은 물론 OECD 22개 회원국 평균(0.190%)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TFP란 경제 전체의 생산 증가분 중 노동과 자본의 증가에 따른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요소에 따른 증가분으로 R&D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 역시 최근 ‘정부 R&D 투자, 뿌린 만큼 거두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연구보고서를 통해 정부 출연 연구기관의 예산이 지난 98년에서 2006년 사이 153.5% 증가했음에도 특허등록 건수는 72.5%, 기술료 수입실적은 80.2% 증가하는 데 그쳤다고 밝혔다. 예산증가율에 비해 정부 R&D 연구성과가 크게 저조하다는 비판이었다. ◇엄격한 사전ㆍ사후 검증 시스템 확보 시급=국가 R&D 사업에 대한 이 같은 경고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여전히 R&D 사업의 ‘특수한(?)’ 성격을 내세우며 정부 R&D 사업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정부 R&D사업 총괄부서인 과학기술혁신본부의 박종구 본부장은 “R&D 투자는 특허나 논문 실적이 바로 늘어나는 게 아니라 투자 후 2~5년 사이 실적이 나타나는 등 시차가 발생하게 돼 있다”며 “따라서 투입되는 예산 규모로 봐야 할 게 아니라 프로젝트의 성격을 따져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KDI의 한 관계자는 “R&D는 원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크고 실패 가능성도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연구 성과의 산업계 파급효과가 확실한 일본 등과 비교해볼 때 정부의 성과 관리는 분명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한정된 재원을 가지고 효율적으로 투자하기 위해 가장 시급히 개선돼야 할 부분이 바로 엄격한 평가관리체계 구축”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과기부는 올해 연구성과 종합관리를 위해 56억원을 들여 현재 부처별로 서로 다른 양식으로 짜여진 연구성과 관리양식의 유형별 표준화 작업 등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정부 R&D 성과관리에 관한 표준모델이 만들어지기는 이번이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