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12월 16일] 도넘은 CCTV 맹신

"기자 양반! 범죄를 줄이는 효과가 큰 데 뭔 소리를 하는 거요. 평소 행실이 안 좋아서 CCTV에 찍히는 것이 두렵소? CCTV는 더 많이 설치돼야 합니다." 난 14일 한 독자로부터 한 통의 e메일이 도착했다. 전국에 400만대 가량 설치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민간 CCTV가 사실상 관리·감독이 이뤄지지 않아 개인영상정보보호의 심각한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한 기자의 보도 내용에 대한 항의 메일이었다. 독자의 생각이 틀렸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이미 벌어진 범죄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CCTV가 범인을 검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온 사례를 봐왔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은 성폭력· 살인 등 흉악 범죄를 저지른 범인들이 CCTV에 덜미를 잡히는 모습을 보면서 CCTV의 성능에 감탄하기 마련이다. 그 중 일부는 CCTV가 우리의 안전을 지켜주는 든든한 파수꾼이라는 믿음에까지 이른다. 그러나 맹목적인 믿음은 항상 위험을 내포하기 마련이다. CCTV도 마찬가지다. 범죄 예방이나 교통 단속 등 분명한 목적에 의거해 운영될 때만 든든한 안전 지킴이가 되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거꾸로 우리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빅브러더(big brother)가 될 수도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모습을 찍은 영상을 누군가 보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 영상이 인터넷을 통해 여기저기 떠다니기까지 한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끔찍하다. 하지만 이런 끔찍한 상상이 점차 현실로 바뀌고 있다. 현재 전국 곳곳에 퍼져 있는 민간 CCTV는 400 만대 정도로 추산될 뿐 누가 어디에 어떤 목적으로 설치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14일 국가인권위원회의 민간 CCTV 설치 및 운영 실태조사 발표에서도 알 수 있듯이 CCTV는 이미 우리 생활의 곳곳에 깊숙이 파고들고 있지만 이를 제재할 마땅한 법적 수단은 부족한 상황이다. 범죄를 줄이는 것도 좋다. 행실이 나쁘기 때문에 CCTV 설치를 반대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좋다. 하지만 그 이전에 CCTV가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는 민간 CCTV에 대한 명확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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